서울 시내버스 노조 역사상 첫 여성 위원장의 어깨는 무겁다. 새벽 휴게실 정전부터 징계위원회까지, 조합원의 크고 작은 일이 모두 조합 사무실로 모인다. 운전석에서는 내 일만 책임지면 됐지만, 위원장 자리에서는 조합원 257명을 하나하나 챙겨야 한다.
차정희 신수교통 노동조합 위원장. 2003년부터 서울 시내버스를 운행했으며, 2026년 7월 서울 시내버스 첫 여성 노조위원장으로 취임했다. (사진=교통일보 오승안 기자)교통일보는 지난 10월 30일 차정희 신수교통 노동조합 위원장의 하루를 동행했다. 서울 시내버스 준공영제 운수회사는 65곳이고, 신수교통은 그중 하나다.
차 위원장은 2003년 4월 19일 처음 시내버스 운전대를 잡은 운행사원 출신이다. 요즘 서울 시내버스 업계에서는 '버스 기사' 대신 '운행사원'이라는 호칭을 쓴다.
23년간 운전석을 지킨 그는 2026년 7월 28일 서울 시내버스 노조 첫 여성 위원장에 취임했다. 노조 위원장으로서 조합원 입장을 대변하는 위치에 있다.
"쉼터이자 고충처리 민원실"…문 닫힐 틈 없는 조합 사무실
오전 9시, 조합 사무실 문은 쉴 새 없이 열리고 닫혔다. 차 한잔하러 들른 운행사원도, 근무표 조정을 부탁하러 온 운행사원도 있었다. 차 위원장은 기획실장 한 명과 함께 사무실을 꾸리고 있다.
이날 첫 현안은 차고지 휴게실이었다. 전날 밤 휴게실 전기가 끊겨 히터가 멈췄고, 새벽까지 운행하는 오후반 근무자들이 불편을 겪었다. 회사 당직과 연락이 닿지 않아 이날 정비 부서가 차단기를 점검하기로 했다.
위원장의 일은 그날그날 바뀐다. 정해진 목록이 없다는 게 차 위원장의 설명이다. 급여가 잘못 계산됐다는 문의, 배차가 꼬였다는 하소연, 당일 근무표를 바꿔야 하는 사정까지 조합원들이 들고 오는 일은 다양하다.
배차와 근무표는 회사가 짜지만, 조합원의 사정을 회사에 전하고 조율하는 건 노조의 몫이다. 새벽에 사고가 나면 조합원 곁에서 회사와의 처리 과정을 함께 챙기고, 사고가 징계로 이어지면 징계위원회 자리까지 동행한다.
용건 없이 커피를 마시러 오는 조합원도 있다. "여기는 항상 열려 있으니까 조합원들의 쉼터이자 고충처리이자, 다 그런 민원실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차 위원장이 말했다.
"옆에 내 편 하나 있다는 게"…발언권 없는 징계위에도 가는 이유
이날 오전 11시에는 징계위원회가 열렸다. 위원장에게는 징계위 발언권이 없다. 그래도 차 위원장은 매번 참석한다. 그는 "조합원이 옆에 내 편이 하나 있다는 게 마음적으로 좀 든든할 것 같아서 그냥 같이 참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징계위가 끝난 뒤에는 또 다른 약속이 있었다. 징계로 오랫동안 운전대를 놓았다가 다음 날 다시 승무(버스 운행 근무)에 나서는 조합원과의 점심이다. 복귀 전에 마음의 안정을 찾게 해주고 싶다는 이유였다.
운전석 시절과 무엇이 다른지 묻자 그는 사람을 꼽았다. "버스 운전할 때는 손님들 대하고 내 일만 하면 되는 거 같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내 일뿐이 아니라 조합원들 하나하나 사람 관리하는 게 많이 힘들더라고요."
"엄청 떨었어요"…23년 전 첫 운전대
차고지 운전석에 다시 앉은 차 위원장은 첫 운행 날을 떠올렸다. "뒤에서 가르쳐주시는 분이 계신 거랑, 내가 처음으로 이 핸들을 잡고 나가서 손님들 응대하는 거랑은 천지 차이더라고요. 엄청 떨었어요."
시작은 동료들이었다. 회사에 아는 동료가 많아 같이 해보자는 말에 운전대를 잡았다. 가족들은 덩치 큰 버스를 어떻게 모느냐며 걱정했다. 지금은 잘했다고 말해준다고 했다. 그는 기사 대신 '운행사원'으로 불러달라고 했다.
서울 첫 여성 위원장으로서 부담을 묻자 그는 "어깨가 무겁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여성 운행사원들도 위원장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준 것이기 때문에 제가 잘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차정희 신수교통 노동조합 위원장이 6일 서울 신수교통 노조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사진=교통일보 오승안 기자)"여성분들도 남자 못지않게 강할 수 있다"…달라진 운전석
차 위원장은 여성 운행사원이 예전보다 훨씬 많아졌다고 말했다. 그가 운전대를 처음 잡던 시절엔 업계 분위기가 거칠었다. 지금은 남녀 구분 없이 같은 조건으로 운행하고 급여도 똑같이 받는다고 설명했다.
숫자도 그의 말을 뒷받침한다. 서울시에 따르면 2024년 시내버스 운전직 4호봉의 월평균 임금은 513만 원 수준이다. 같은 해 여성 근로자 월평균 임금(285만1000원)의 약 1.8배다. 운수·창고업은 여성 임금이 남성의 93.3%로, 산업 가운데 성별 임금 격차가 작은 편이다.
이날 신수교통 차고지에서 만난 여성 운행사원은 차 위원장을 포함해 4명이었다. 4명 모두 근속 기간이 15년에서 20년을 넘었다. 차 위원장은 "서울시 준공영제라 대우도 괜찮다"며 요즘은 젊은 층의 관심도 커졌다고 말했다.
운행사원을 고민하는 여성들에게 그는 "여성분들도 남자 못지않게 강할 수 있다"며 "도전하면 제2의 인생이 펼쳐질 거라고 장담한다"고 말했다.
그가 권하는 운전석의 하루는 해가 뜨기 전에 시작된다. 서울 시내버스는 오전반과 오후반이 일주일씩 번갈아 도는 1일 2교대다. 오전 3시 50분에 첫차가 나가는 노선이면 운행사원은 3시쯤 출근한다.
음주 측정을 하고 배차표에 서명한 뒤, 깜깜한 차고지에서 휴대폰 불빛을 비춰가며 차량을 살핀다. 노선을 몇 바퀴 도는 동안 긴장은 한순간도 늦출 수 없다고 차 위원장은 말했다.
하루의 끝은 이렇게 기억했다. "종점에 핸들 딱 놓고 사이드 딱 채우고, 발을 이 차고지에 디뎠을 때 그 안도감. 오늘도 하루 끝났구나. 무사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