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자율주행 시범운행지구 42곳 가운데 14곳은 서비스조차 운영하지 않고 있다. 숫자를 쌓는 동안 정작 제도는 멈춰 있었다. 국토교통부가 17개 시·도와 광역협의체를 꾸린 배경이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 자율주행자동차 시범운행지구 도로에 운영 안내 표시가 설치돼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토교통부는 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전국 17개 시·도 국장급 공무원이 참여하는 '자율주행자동차 시범운행지구 광역협의체'를 공식 출범시켰다. 지자체별로 뿔뿔이 흩어진 실증 정책과 운영 경험을 모으고, 들쭉날쭉한 제도 기준을 하나의 틀로 수렴해 가기 위한 협력 기구다.
자율주행자동차법 시행 이후 2020년부터 9차례의 지정 절차를 거쳐 현재 17개 시·도 42곳이 시범운행지구로 지정돼 있다. 도심 순환 셔틀, 관광지 자율주행 버스, 산업단지 물류 운송 등 지역 여건에 맞는 다양한 실험이 이어졌고, 기술 검증과 운영 노하우도 일정 수준 쌓였다. 외형만 보면 성공적인 확산이다.
내부를 들여다보면 사정이 달라진다. 지정 후 1년이 경과한 34개 지구 가운데 14곳(41%)은 자율주행 서비스를 단 한 번도 운영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국토부에 따르면 2024년 평가 대상 24개 지구 중에서는 절반을 넘는 13곳이 A~E 등급 체계에서 하위 두 단계인 D·E를 받았다. 지구 수가 늘어난 속도만큼 성과의 격차도 함께 벌어진 셈이다.
미운영 지구가 속출한 배경에는 구조적 원인이 겹쳐 있다. 시범운행지구 지정 권한은 광역지자체에 있지만 실제 운영은 기초 지자체나 민간 사업자가 맡는 구조여서, 지정 이후 재원을 확보하지 못해 서비스 출시 자체가 무산된 사례가 이어졌다. 모니터링과 피드백 체계의 부재도 문제로 지목된다. 정부와 지자체가 운영계획 수립과 결과 보고에만 집중한 나머지 기술·정책 피드백 루프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성과평가 지표의 역설도 있었다. 교통사고 발생 여부를 핵심 지표로 삼은 탓에 지자체가 사고 위험을 회피하고자 아예 운행을 하지 않는 방식으로 '안전 점수'를 지키는 현상이 나타났다. 실증을 독려하기 위해 만든 평가 체계가 오히려 실증을 억제하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양적 팽창이 질적 성과로 연결되지 못한 또 다른 원인은 운영 기준의 파편화다. 동일한 자율주행 기술이라도 지역에 따라 허용 범위가 달라진다. 안전요원 탑승 의무, 운행 구간 설정 방식, 사고 발생 시 대응 절차와 보험 적용 기준이 지자체마다 제각각이다. 중앙정부가 큰 틀을 그려도 현장에서는 지자체 판단이 강하게 개입하는 구조가 굳어져 있다.
이 구조는 실증 단계에서는 유연성으로 작동한다. 지역 조건에 맞는 다양한 실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용화 논의가 시작되는 순간 사정이 달라진다. 동일한 기술과 서비스 모델을 타 지역으로 확장하려면 허가 조건과 운영 규정을 처음부터 다시 맞춰야 한다. 사업자는 지역마다 별도의 협의와 조정 과정을 되풀이해야 하고, 그만큼 투자 안정성이 흔들린다.
서울시 미래첨단교통과 자율주행팀 관계자는 "지금은 지역마다 허가 기준과 운영 조건이 달라 같은 기술을 적용해도 서비스 확장이 쉽지 않다"며 "실증 단계에서는 다양한 실험이 가능했지만 상용화를 논의하는 단계에서는 최소한의 공통 기준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업계 안에서도 계속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이 기준 파편화로 발목 잡힌 사이, 경쟁국들은 속도를 높이고 있다. 미국에서는 웨이모가 샌프란시스코·로스앤젤레스 등에서 무인 로보택시 서비스를 상업 운행 중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자율주행 관련 규제를 추가 완화하는 방향을 예고했고, 그 수혜를 가장 먼저 받을 기업으로 테슬라와 웨이모가 꼽힌다. 중국 바이두는 베이징·우한·선전 등 11개 도시에서 로보택시 '아폴로 고'를 운영하며 누적 주행거리 1억㎞를 돌파했다. 2024년 8월 기준 중국 내 자율차 임시면허증 발급 건수만 1만6000개에 달한다.
두 나라 모두 '도시 전체가 실증구역'이라는 개념으로 운영된다는 점이 한국과의 결정적 차이다. 금지된 것 외에는 허용하는 네거티브 규제 방식으로 기업의 실증 환경을 열어줬다. 반면 한국은 새로운 기능을 하나하나 검증받아야 실증이 가능한 포지티브 규제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교통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은 "데이터 확보량에서 이미 격차가 벌어졌다"며 "웨이모의 누적 자율주행 거리는 수천만 마일에 달하는데, 국내 전체 자율주행 실증 데이터를 합쳐도 그 수준에 크게 못 미친다"고 말했다. 그는 "기술 격차는 결국 주행 데이터 격차이고, 데이터 격차는 실증 환경 격차에서 비롯된다"고 덧붙였다.
이번 광역협의체가 기준 파편화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소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회의적 시각도 나온다. 협의체는 협력 네트워크 성격으로, 지자체가 결론을 반드시 이행해야 하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 유사한 중앙-지방 협의 기구가 출범 이후 실질적 기준 통일로 이어지지 못한 전례가 있다는 점도 우려를 키운다.
김진유 경기대학교 교통공학과 교수는 이 구조적 한계를 날카롭게 짚는다. "광역협의체를 통해 경험을 공유하고 방향을 조율하는 것은 의미 있는 출발"이라면서도 "문제는 협의 결과를 어떻게 구속력 있는 기준으로 전환하느냐인데, 현행 자율주행자동차법 체계에서는 그 메커니즘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공통 기준을 법령으로 명문화하지 않는 한, 지자체는 언제든 자기 판단으로 돌아갈 수 있다"며 "협의체 운영과 동시에 자율주행자동차법 개정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존 운수업계 "전환 지원 없는 상용화는 받아들일 수 없다"
제도 정비보다 더 뜨거운 변수는 기존 운수업계와의 충돌이다. 로보택시는 택시 시장과 정면으로 맞부딪히고, 노선형 자율주행 셔틀은 기존 버스 체계와 운행 구역이 겹친다. 지역마다 허가 조건이 다른 현재 상황은 자율주행 사업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기존 운수사업자와의 형평성 논란으로 번질 소지가 크다.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관계자는 감정을 절제한 목소리로,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가 자율주행 기술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다"라며 "같은 승객을 두고 경쟁하는데 한쪽은 안전요원 의무에 보험 기준까지 지자체 재량이고, 한쪽은 여객자동차법 전체를 적용받는다면 그게 공정한 시장이냐"고 반문했다.
그는 "정부가 2027년 상용화를 말하기 전에, 현재 40만 택시 종사자의 생계 전환을 위한 구체적 로드맵을 먼저 내놓아야 한다"고 못 박았다. 정부도 이 긴장을 의식해 이해관계자 합동 협의체를 연내 발족해 상생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전환 지원 방안은 아직 윤곽이 잡히지 않은 상태다.
이번 협의체 출범과 함께 제도 손질도 함께 추진된다. 성과 평가를 개별 시범운행지구 단위에서 광역지자체 단위로 전환하고, 우수 광역지자체에는 시범운행지구 면적·노선 길이·유상 여객 및 화물 운송 허가 대수 상한을 자율 조정하는 권한을 부여한다. 평가 지표도 '사고 발생 여부' 중심에서 '사고 후 신속한 사후 조치 여부'로 바꿔 지자체가 운행을 기피하는 역설을 없애겠다는 방침이다.
현장에서 '그림자 규제'로 불리는 항목들도 손질 대상에 올랐다. 시험운전자 외 별도 안내요원 의무 탑승 규정, 승객 입석 금지 조항, 만 6세 미만 탑승 제한 등이 대표적이다. 법령에 명시적 근거도 없이 현장에서 관행처럼 굳어진 이 규제들이 서비스 확장을 옥죄고 있다는 지적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김홍목 국토교통부 모빌리티자동차국장은 "국토부는 고속도로를 포함해 전국 17개 시·도 42곳에 시범운행지구를 지정하며 자율주행 상용화 기반을 마련해 왔다"며 "광역협의체를 통해 지자체와 협력하면서 자율주행 산업 발전을 위한 제도 개선을 함께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남은 과제는 숫자가 아니라 기준이다
이번 협의체 출범은 자율주행 대중화의 선언이 아니라 상용화를 앞둔 제도 정비의 출발 신호에 가깝다. 실증 지구 숫자는 이미 충분히 쌓였다. 문제는 그 42곳을 하나의 시장으로 연결할 공통 언어가 없다는 점이다. 미국과 중국이 도시 전체를 실증 무대로 삼고 상용화 경쟁을 벌이는 동안, 한국은 지자체마다 다른 기준표를 들고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다. 협의체가 진짜 돌파구가 되려면 경험 공유를 넘어 법적 구속력 있는 공통 기준의 제도화로 이어져야 한다.
하성우 기자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