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이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서울시의 시내버스 필수공익사업 지정 논의도 이어지게 됐다. 서울시와 사측은 파업 때도 최소한의 버스는 달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조는 헌법이 보장한 단체행동권을 사실상 빼앗는 조치라며 맞서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서울고법 형사7부는 지난 23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오 시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1심은 시장직 상실형에 해당하는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었다.
오 시장은 선고 2주 전인 같은달 7일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도 필수공익사업 지정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지하철은 필수공익사업장이라 파업 때도 시민 불편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지만, 버스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시민들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는 매우 불비합니다"라고 했다. 정부를 향해서는 "고용노동부의 입장은 뭐 거의 절벽처럼 느껴집니다"라며 전향적인 검토를 촉구했다.
필수공익사업은 파업을 하더라도 국민 생활에 꼭 필요한 서비스는 일정 수준 이상 유지해야 하는 사업이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 따라 지하철·철도·항공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쟁의권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파업은 할 수 있지만, 노사가 미리 정한 비율만큼은 운행을 이어가야 한다. 회사는 파업 참가 인원의 절반까지 외부 인력을 투입해 빈자리를 메울 수도 있다.
서울 시내버스는 올해 1월 13일부터 이틀간 멈춰 섰다. 8개월 뒤인 9월에도 파업 직전까지 갔다. 노사는 9월 15일 오후 2시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서 마주 앉았다. 12시간 가까운 줄다리기 끝에 합의안에 서명한 건 16일 새벽 1시 50분. 예고된 첫차 파업을 2시간여 앞둔 시점이었다. 임금 인상률은 3.2%로 정해졌다.
사측은 합의 직후 필수공익사업 카드를 꺼내 들었다. 김정환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버스조합) 이사장은 "시민의 발을 묶는 일이 없도록 시내버스를 필수공익사업으로 지정하는 게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시민의 발인 버스 파업을 걸고 협상을 하다 보니 한계가 있었다"며 협상 구조의 문제도 짚었다.
차이는 1월 파업 때 숫자로 드러났다. 서울시에 따르면 파업 첫날 오전 9시 시내버스 운행률은 평시의 6.8%에 그쳤다. 평소 버스 100대가 다니던 길에 7대만 다닌 셈이다. 2022년 11월 파업에 들어간 서울 지하철은 같은 시각 운행률 100%를 유지했다.
시내버스가 처음부터 제도 밖에 있었던 건 아니다. 1997년 3월 노조법 제정 당시 시내버스는 필수공익사업에 한시적으로 포함됐다. 하지만 민영제라는 이유로 특별시·광역시 시내버스에는 2000년 12월 31일까지라는 일몰 규정이 붙었고, 2001년부터 대상에서 빠졌다. 서울시는 2004년 준공영제를 도입해 버스회사 적자를 시 재정으로 메우고 있다. 지난해 지원액만 4575억원이다.
박점곤 서울시버스노동조합 위원장(왼쪽)과 김정환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 이사장(오른쪽)이 16일 새벽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서 2026년도 임금협약 조정안에 서명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측은 버스가 지하철보다 시민 일상에 더 가깝다고 강조한다. 한대광 버스조합 대외협력 상무는 본지 통화에서 "지하철은 9개 노선이 있지만 아파트 앞, 주택가 구석구석은 시내버스만 다닌다"며 "지방으로 갈수록 지하철이 없는 곳이 많아 버스가 유일한 대중교통인 만큼 필수공익사업 지정 요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신중하다. 국회에는 신동욱 국민의힘 의원이 1월 대표발의한 노조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노조법 제71조의 필수공익사업 범위에 '정기노선 여객운수사업'을 추가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소관 부처인 고용노동부는 수용 불가 입장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노동부는 버스가 멈춰도 일상생활을 현저히 해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지역마다 운수회사가 여럿이라 독과점성도 약하다는 판단이다.
노조는 정면으로 반발하고 있다. 유재호 서울시버스노동조합 정책기획국장은 본지 통화에서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은 일반 법률도 아닌 헌법이 보장한 권리"라며 "필수공익사업으로 지정해 최소 운행률을 유지하게 되면 단체행동권은 사실상 유명무실해진다"고 강조했다.
이미 있는 장치로 충분하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유 국장은 "사회질서에 대혼란이 올 경우 노동부 장관이 긴급조정권을 발동할 수 있는 법률적 장치가 이미 마련돼 있다"며 "그런 제도를 두고 굳이 헌법상 기본권을 추가로 제한하려는 시도는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서울 시내버스 노사가 파업 여부를 놓고 막판 협상을 벌이던 지난 9월, '시민의 일상을 멈추는 파업 반대' 문구를 단 시내버스가 서울 도심을 달리고 있다. 노사는 16일 새벽 임금협약에 합의했다. (사진=교통일보)전문가는 지정 효과가 생각만큼 크지 않을 수 있다고 봤다. 박동주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28일 본지 질의에 "필수공익사업으로 지정될 경우 파업 시에도 일정 업무 유지율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시민이 체감하는 출퇴근의 어려움이 다소 덜 가중될 가능성은 있다"면서도 "현재도 파업 시에는 지방정부 차원에서 대체운송수단을 투입하기 때문에, 지정되더라도 실제 체감이 크지 않을 수 있다"고 답했다. 서울시는 1월 파업 당시 지하철을 하루 최대 203회 증회하고 전세버스를 763대까지 투입했다.
박 교수는 해법을 다른 데서 찾았다. 경전철, 수요응답형 교통수단(DRT·승객 호출에 따라 운행하는 버스), 공유자전거 등으로 생활권 교통망을 넓히면 버스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노사, 그리고 지방정부가 상생의 자세로 평상시에도 꾸준히 대화를 이어가고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리라 생각한다"며 "필수공익사업 지정이라는 다소 강제성 있는 대책은 또 다른 갈등을 발생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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