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광, 매장 안까지 큰 소리가 났다." 지난 5월 26일 오후, 서소문 고가차도 인근에서 복권방을 운영하는 최모(42)씨는 소리를 듣고 뛰어나왔다.
16일 서울 서대문구 서소문건널목 인근 도로가 통제되고 있다. (교통일보)서울 서대문구 서소문 고가차도 철거 현장에서 상판이 무너진 순간이었다. 안전진단을 하러 들어간 감리단장과 현장소장, 외부 전문가 3명이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사고 당시 현장에는 9명이 있었다. 33분 만이었다.
고가차도는 교차로나 철도 건널목처럼 교통이 엉키는 지점을 공중으로 우회하기 위해 세운 도로 구조물이다. 서울에는 1960~80년대 급격한 도시화와 자동차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고가차도가 대거 건설됐다. 서소문고가도 그중 하나로, 1966년 경의선 철도 건널목을 넘기 위해 세워졌다. 하루 평균 차량 4만 대가 다니는 서울 도심의 핵심 축이었다.
사고 구간 바로 아래로는 경의선 철도가 지나가는 서소문건널목이 있었다. 건널목 구간은 한국철도공사와 협의 후 차단 작업이 필요했기에 나머지 고가 구조물이 모두 철거되는 동안에도 홀로 남겨져 있었다. 철도 운행을 멈출 수 없어 작업 가능 시간은 새벽 1시 30분부터 4시 30분까지, 하루 3시간뿐이었다.
날을 잡아 며칠 안에 끝낼 수 없느냐는 의문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서소문건널목 아래로는 하루 600회 이상의 열차가 오간다. KTX를 포함한 주요 간선열차가 반드시 지나야 하는 구간이다. 며칠이라도 선로를 막으면 전국 철도망이 마비된다.
"보강 없이 들어간 것이 문제"
이환승 교통안전공학박사는 사고 당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원인을 이렇게 짚었다. 철거가 진행되면서 해체된 부분의 하중이 나머지 구조물로 전이되는 상황에서 안전점검을 하려면 인공기둥 수십 개를 설치하고 보강재 파이프를 박아가며 단계적으로 작업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박사는 "모든 조치를 완료하고 나서 진단에 들어갔어야 했는데, 중요한 보강 조치를 하지 않고 안전진단에 착수한 것이 문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서소문 사고는 100% 인재(人災)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지적은 이후 수사에서도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경찰은 설계 단계부터 제기된 보강계획이 시공 단계에서 충분히 반영됐는지, 단차 확인 이후 현장 진입 지시가 적절했는지를 들여다보고 있다. 안전관리 책임자 4명이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됐으며, 정확한 원인과 책임 소재는 수사 중이다.
고가차도가 철거된 자리에 철로가 그대로 드러난 서소문건널목. (교통일보)다음은 도림, 그다음은 삼각지
국토부 조사에서도 문제가 드러났다. 시공사와 서울시는 새벽에 2.9cm 단차를 발견하고도 국가철도공단과 코레일에 즉시 알리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그 사이 열차는 계속 달렸다. 붕괴 5분 전 KTX가 고가차도 붕괴 지점을 지났고, 무궁화호가 통과한 지 1분 만에 상판이 무너졌다.
서울에 남아 있는 고가차도는 서울시 도로시설물 대장 기준으로 80여 개다. 이 가운데 도림고가차도, 삼각지고가차도 등 앞으로 철거가 추진되거나 검토 중인 곳이 6곳 더 있다. 도림고가차도는 1974년 설치돼 2017년과 2022년 두 차례 정밀안전진단에서 C등급을 받았고 현재 철거 설계가 진행 중이다.
삼각지고가차도는 같은 해 완공돼 50년 넘게 사용된 노후 구조물로 타당성 조사가 진행 중이다. 두 곳 모두 철도와 인접한 구조물이다. 국토부는 서소문 사고 직후 두 곳을 철도 인접 취약교량 특별점검 대상에 포함시켰다.
김지환 서울시 교량안전과 과장은 본지 통화에서 "서소문 고가차도 사고 이후 현장의 경각심이 높아진 상태"라며 "도림·삼각지고가차도를 포함한 앞으로의 철거 현장에서 추후 어떠한 사고도 발생하지 않도록 신중을 기하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사고 뒤 달라진 현장… 그러나 불안은 여전하다
현장에는 변화가 있었다. 김지환 과장은 "서소문 고가차도 사고 이후 서울시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안전 긴급진단을 진행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며 "작은 것이라도 이상 상황이 있다면 처리해 보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고 이후 투입된 용역팀장 이모(50대)씨는 "아침 작업 전 안전교육(TBM)은 물론 점심에도 안전 교육을 철저하게 받고 있다"고 했다. 무더운 여름 날씨에도 현장 전체 인원이 안전모를 벗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현장 인근 상인의 시선은 달랐다. 최씨는 "사고 이전에는 건널목에서 안내원 통제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과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고, 점심시간에는 직장인들이 쏟아져 나와 위태로운 상황이 많았다"고 했다. 그는 "사고 이후 사람들이 조심하는 눈치지만, 8월부터 새 다리 공사가 시작되면 경각심이 오래가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사고 이후 서소문건널목 관리원을 기존 2~4명에서 4명 상시 배치로 늘리고 AI CCTV도 설치하기로 했다. 최씨는 "이전에는 코레일 직원들이 건널목을 통제했는데, 지금은 다른 건널목 관리원이 하고 있어 불안한 감이 있다"고 했다.
서소문 고가차도 철거 현장에서 작업자들이 안전모를 착용한 채 작업하고 있다. (교통일보)
오승안 기자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