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강원 강릉에서 발생한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의 책임 소재를 가리는 민사소송 항소심 재판이 열린다. 차량 결함 여부와 운전자 페달 오조작 가능성을 둘러싼 법정 공방이 다시 이어질 전망이다.
2022년 12월 강원 강릉에서 발생한 급발진 의심 사고 현장. 차량이 배수로로 추락해 크게 파손됐다. (사진=연합뉴스)
서울고법 춘천재판부 민사2부(부장판사 심영진)는 5일 고(故) 이도현 군 유족이 자동차 제조사 KG모빌리티(KGM·옛 쌍용자동차)를 상대로 제기한 9억2000만원 규모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 첫 변론을 연다.
사고는 2022년 12월 6일 강릉시 홍제동 한 도로에서 발생했다. 당시 60대 운전자가 몰던 티볼리 에어 차량이 배수로로 추락해 차량에 타고 있던 12세 손자 이 군이 숨졌다.
유족 측은 차량 결함에 따른 급발진이 사고 원인이라고 주장하며 제조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차량 결함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원고 측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사고기록장치(EDR)에 사고 전 약 6초 동안 가속 페달이 100% 밟힌 상태로 기록된 점 등을 근거로 운전자의 페달 오조작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항소심에서는 차량 전자제어장치(ECU) 소프트웨어 결함 여부가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급발진 의심 사고는 차량 결함 여부를 둘러싼 입증 책임이 소비자에게 있는 구조여서 법적 판단이 쉽지 않은 사건으로 꼽힌다.
사고기록장치(EDR) 기록의 신뢰성을 두고도 양측 주장이 엇갈린다. 유족 측은 약 30초 동안 차량이 급가속하는 상황에서 가속 페달을 브레이크로 착각해 계속 밟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주장한다. 반면 KGM 측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분석 결과를 근거로 운전자 페달 오조작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자동 긴급 제동장치(AEB) 미작동 여부도 주요 쟁점이다. 유족 측은 사고 전 차량에서 전방 충돌 경고가 여러 차례 발생했지만 AEB가 작동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제조사 측은 가속 페달을 일정 수준 이상 밟을 경우 AEB 기능이 해제될 수 있다고 설명하며 결함 가능성을 부정하고 있다.
사고 당시 브레이크등 점등 여부 역시 논쟁 대상이다. 유족 측은 후방 차량 블랙박스와 인근 폐쇄회로(CC)TV 영상 등을 근거로 브레이크등이 켜졌다고 주장하지만 제조사 측은 점등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유족은 항소심에서 국과수 감정관 증인 신청과 추가 감정 등을 통해 차량 결함 가능성을 다시 입증할 계획이다. 이어 이번 재판이 급발진 사고 입증 구조에 대한 제도적 논의를 촉발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도현 군의 아버지 이상훈 씨는 “현행 제도에서는 ECU 소프트웨어 결함 존재와 운전자 오조작이 없었다는 점을 모두 소비자가 입증해야 한다”며 “기술 정보가 제조사에 집중된 상황에서 일반 소비자가 이를 증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한편 유족은 결함 입증 책임을 소비자에서 제조사로 전환하는 내용의 제조물책임법 개정안, 이른바 ‘도현이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해당 법안은 국민동의청원에서 5만 명 이상 동의를 얻었지만 21대 국회에서 폐기됐고 22대 국회에서도 심사가 진행 중이다.
오승안 기자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