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광명에서 전기택시 급발진 의혹이 불거지면서, 전기차 전환을 서두른 업계가 미처 채우지 못한 제도적 공백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서울 도심 도로를 주행 중인 전기택시. (사진=교통일보)
4월 10일 새벽, 광명시 도로를 달리던 전기택시 한 대가 도로변 신호기를 들이받아 승객이 다치는 사고가 났다. 경찰은 현장 출동 후 음주 여부를 확인하는 기본 조치와 함께 블랙박스 영상 및 차량 기록 확보에 착수했다. 운전자는 사고 직후 차가 갑자기 치고 나갔고 제동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진술 하나가 긴 검증 절차의 시작이 됐다.
수사의 핵심은 사고기록장치(EDR)다. 충돌 직전 5초간의 차량 속도 변화, 가속 페달 작동 여부, 제동 신호 등이 기록돼 있는 이 장치는 조작이 불가능한 저장 방식을 쓴다. 급발진처럼 차량 제어가 쟁점이 되는 사고에서 가장 결정적인 판단 근거가 되는 이유다. 경찰은 블랙박스 영상과 EDR 자료를 교차 분석해 충돌 직전 주행 상황을 확인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이 분석은 하루 이틀에 끝나지 않는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감정이 의뢰되면 통상 30일에서 길게는 수개월이 걸린다. 그 기간 동안 운전자는 사실상 잠재적 과실자 신분에 묶인다. 보험 처리가 지연되고, 운행 재개도 불투명하다. 차량 결함이 입증되기 전까지 사고의 무게는 먼저 운전자에게 기울어지는 구조다.
전기택시 기사 박모씨(52)는 이 소식에 남다른 반응을 보였다. "전기차로 바꿀 때 연료비 줄어든다는 건 알았는데, 사고가 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도 말해준 적이 없다"며 "내연기관이랑 전기차는 구조 자체가 다른데, 만약 차가 갑자기 이상하게 움직였다면 나는 뭘 근거로 결백을 주장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보조금 받아서 전기차로 전환하는 게 정책이었지, 사고 대응 교육은 한 번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전국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관계자 보상지원담당 관계자도 같은 우려를 꺼냈다. "조합원들 사이에서 전기차로 바꾼 뒤 사고가 났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물어오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고 전했다. 그는 "보조금 지원은 빠르게 이뤄졌는데 사고 대응 매뉴얼이나 운전자 교육은 전혀 따라오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급발진이든 페달 오조작이든 결론 나오기 전까지 운행을 못 하게 되면, 그 생계 공백은 누가 책임지느냐"고 물었다.
통계는 이런 우려가 현실임을 보여준다. 국과수가 지난해 12월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4년 10월까지 접수된 급발진 의심 사고 감정 건수는 382건에 달한다. 연도별로는 2020년 45건에서 2021년 51건, 2022년 67건, 2023년 105건으로 증가 추세를 이어왔고, 2024년은 10월 기준으로 이미 114건에 달해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그러나 382건 중 차량 결함에 의한 급발진으로 판명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원인이 규명된 건수의 85.6%는 운전자의 페달 오조작이었다.
2024년 7월 서울 시청역 인근에서 14명의 사상자를 낸 역주행 사고가 이 흐름을 더 키웠다. 가해 운전자가 급발진을 주장하면서 전국적으로 유사한 주장이 쏟아졌고, 국과수는 사상 최초로 감정인력을 세 배 투입해 열흘 만에 결론을 냈다. 결과는 페달 오조작이었다. 이 사건 이후 급발진 감정 건수는 더 가파르게 늘었고, 국과수 인력에 과부하가 걸리는 현상도 나타났다.
이번 광명 사고가 더 주목받는 이유는 전기택시 보급 확대의 흐름과 맞물려 있어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전국 전기차 누적 등록 대수는 68만4천 대로, 3년 전 대비 두 배 이상으로 불어났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보조금 정책에 힘입어 택시업계의 전기차 전환 속도는 일반 승용차보다 빠른 편이다. 전기택시는 부제 해제 혜택과 내연기관 대비 절반 수준의 연료비 덕분에 경제성이 높고, 일부 지자체는 일반 전기 승용차보다 수백만 원가량의 추가 보조금까지 얹어주고 있다.
그러나 보급 속도에 비해 사고 대응 체계는 뒤처져 있다. 전기차는 배터리 관리 시스템과 전력 제어 장치가 연동되는 구조여서, 사고 원인 규명에 기존 내연기관과 다른 기술적 검토가 필요한 경우가 생길 수 있다. 운전자 측이 독립적으로 차량 결함을 입증하기 어려운 구조도 문제다.
EDR 데이터 해석 권한이 수사기관과 제조사에 집중된 상태에서, 운전자가 반론을 제기할 창구는 사실상 없다. 택시업계에서는 전기차 전환 시 제조사·지자체 연계 안전 교육 의무화를 촉구하고 있지만, 제도적 논의는 아직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
광명 사고의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경찰은 EDR 기록과 블랙박스 영상을 분석 중이며, 필요할 경우 국과수 감정과 제조사 기술 점검도 병행할 수 있다. 결론이 나오기까지 수개월이 걸릴 수 있고, 그 공백의 무게는 다시 운전자 혼자 감당해야 한다. 전기택시가 도심 깊숙이 들어온 지금, 이 사고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급발진 의혹이 제기될 때, 기사는 어디서 보호받을 수 있는가.
박래호 기자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