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종각역 인근에서 발생한 택시 추돌 사고를 계기로 고령 택시 운전 환경에서 사고 위험을 키울 수 있는 조건들이 다시 주목되고 있다. 감기약 등 일상적으로 복용하는 약물이 운전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이번 사고를 통해 함께 떠올랐다.
퇴근 시간대 보행자와 차량 통행이 집중된 서울 종로구 종각역 인근에서 발생한 택시 돌진 사고 현장. 단일 지점에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며 도심 보행 안전에 대한 경고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사진=연합뉴스)퇴근 시간대인 지난 2일 오후 6시 7분, 서울 종로구 종각역 인근에서 택시 1대가 보행자와 시설물을 들이받고 승용차 2대를 연이어 추돌했다. 이 사고로 보행자 1명이 숨지고 14명이 다쳤다. 종각역은 지하철 출입구와 횡단보도가 밀집한 구간으로, 유동 인구가 많은 시간대였다.
경찰 수사 결과 운전자는 70대 후반의 택시기사로 확인됐다. 음주 검사에서는 음성이 나왔으나, 약물 간이 검사에서는 모르핀 성분이 검출됐다. 다만 모르핀은 감기약 등 처방약 복용 과정에서도 반응이 나올 수 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정밀감정을 의뢰한 상태다. 운전자는 조사 과정에서 사고 이전 감기약을 복용했다고 진술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오늘(5일)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치사상 등 혐의를 받는 운전자에 대해 구속 전 피의자심문을 진행했다.
이 사고를 구조적으로 보게 만드는 배경에는 택시 운전자의 고령화, 그중에서도 70대 운전자의 비중 확대가 있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2025년 기준 서울 택시 운수종사자 6만8,763명 가운데 60세 이상이 약 75%를 차지한다. 이 중 70대 종사자는 1만8,028명에 달한다. 개인택시 부문에서는 고령화가 더 심각해 전체 4만8,311명 중 60세 이상이 78%를 차지한다.
사고 통계에서도 70대의 비중은 뚜렷하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의 2025년 교통사고 통계에 따르면 서울 지역 택시 운수종사자 교통사고 1,986건 가운데 70대 이상 운전자가 701건으로 집계됐다. 60대(946건)와 함께 사고의 다수를 차지하는 연령대다. 이번 종각역 사고의 운전자가 70대였다는 점은, 이 연령대가 이미 예외가 아닌 사고 구조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고령 운전자가 택시를 운전하는 모습. 택시 운수종사자의 고령화가 심화되는 가운데, 약물 복용과 반응 속도 저하 등 일상적 조건이 운전 안전에 미치는 영향이 다시 주목되고 있다. (사진=교통일보)
고령 운전자의 비중이 커지면서 사고 원인의 성격도 달라지고 있다. 음주처럼 현장에서 즉각 확인되는 요인보다, 운전자 개인의 건강 상태나 약물 복용 같은 조건이 사고 이전부터 작동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번 종각역 사고에서 약물 복용 여부가 수사 초기부터 확인 대상이 된 이유다.
약물의 영향은 ‘취한 느낌’으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신호 인지와 보행자 발견이 늦어지고, 복잡한 교차로에서는 판단과 조작 타이밍이 어긋날 수 있다. 퇴근 시간대처럼 정보량이 많은 환경에서는 작은 기능 저하도 사고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영향은 고령층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날 수 있다. 70대 이상 운전자는 시력·청력·반응 속도가 평균적으로 저하되는 경향이 있다. 만성질환으로 인해 여러 처방약을 복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같은 약을 복용하더라도 고령층, 특히 70대 이상에서는 약물 대사와 배출 속도가 느려 혈중 농도가 오래 유지될 가능성이 있다. 졸림이나 어지럼 같은 주관적 증상보다, 반응 지연과 주의력 저하 같은 기능적 변화가 먼저 나타날 수 있다.
심경원 이대목동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일반적인 감기약 자체가 모두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지만, 코데인 성분이나 항히스타민 계열 약물은 졸림과 판단력 저하, 인지 기능 변화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특히 반사 속도가 이미 느린 고령자에게서는 이런 영향이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심 교수는 또 “노인은 기존에 복용하던 혈압약 등 다른 처방약과 함께 복용할 경우, 흔하지 않은 반응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며 “졸음을 유발하는 약물은 노인뿐 아니라 모든 연령대에서 운전 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종각역 사고는 고령 택시 운전자가 일상적으로 복용하는 약물이 도심 운전 환경에서 어떻게 위험 요인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례다.
사고의 직접 원인과 약물의 영향 여부는 국과수 정밀감정 결과를 통해 가려질 예정이다.
오승안 기자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