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운전자로 인한 교통사고가 늘고 있지만, 해법으로 거론되는 ‘조건부 면허’와 ‘안전장치 의무화’는 모두 제도화 단계에서 멈춰 서 있다. 사고 통계는 경고음을 키우는데 정책은 규제 반발과 형평성 논란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
령 운전자가 교통안전교육을 받기 위해 교육장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고령 운전사고를 둘러싼 논쟁의 핵심은 ‘누가, 어디까지, 어떻게 제한할 것인가’다. 사고 위험을 낮추기 위해 운전 자격을 더 엄격히 관리하자는 요구와, 이동권 침해를 우려하는 반발이 맞서는 사이 정책 선택지는 좁아져 왔다. 여기에 차량 안전기술을 조건으로 붙이는 방안도 거론되지만, 비용과 적용 범위를 둘러싼 논쟁이 이어지면서 제도화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통계는 문제의식을 더 분명하게 만든다. 지난해 전체 교통사고는 19만6349건으로 감소했지만, 고령 운전자가 낸 사고는 4만2369건으로 오히려 늘었다. 전체 사고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20년 14.8%에서 지난해 21.6%로 높아졌다. 사망자 지표에서도 같은 흐름이 나타난다. 지난해 고령 운전자에 의한 교통사고 사망자는 761명으로 2023년(745명)보다 2.1% 늘었고, 전체 사망자 2521명 가운데 30.2%를 차지해 연령대별 비중이 가장 높았다.
사고 위험이 커지는 배경에는 신체·인지 기능 저하가 있다. 일반 운전자가 도심 돌발 상황에 반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0.7초인 반면, 65세 이상 운전자는 1.41초로 두 배가 걸린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반응 속도와 판단력의 차이가 실제 사고 위험으로 이어진다는 점이 수치로 확인되는 셈이다.
정부는 고령 운전자의 자발적 면허 반납을 유도하기 위해 10만~30만원 수준의 교통카드나 상품권을 지급하는 정책을 이어오고 있지만,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고령 운전자 수는 2020년 368만명에서 2030년 725만명, 2040년 1316만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사고 위험 관리가 ‘일시적 대책’이 아니라 구조적 과제가 된 이유다.
해외에서는 보다 직접적인 규제 수단을 쓰는 사례가 적지 않다. 미국은 주별로 의료 검진과 도로 주행 시험을 거쳐 운전 거리·시간·속도 등을 제한하는 조건부 운전면허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독일과 호주 일부 주도 유사한 방식을 적용한다. 영국은 운전자가 복용 중인 약물과 의료 정보를 면허 당국에 신고하도록 하고, 건강 상태가 부적합하다고 판단될 경우 면허 포기를 권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제도 논의는 이어지고 있다. 2019년부터 75세 이상 운전자는 ‘고령 운전자 교통안전교육’을 의무적으로 받고, 면허 갱신 주기는 5년에서 3년으로 줄었다. 조건부 면허 도입도 검토됐지만 “노인에게 운전대를 놓으라는 것이냐”는 반발 여론에 부딪혀 논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규제가 필요하다는 인식과 사회적 수용성 사이의 간극이 정책을 붙잡고 있는 셈이다.
면허 규제의 대안으로는 차량 안전기술을 조건으로 붙이는 방안이 거론된다. 페달오조작방지장치(PMSA)는 브레이크 대신 가속 페달을 급하게 밟는 실수를 감지해 출력을 차단하거나 자동 제동을 거는 장치다. 자동긴급제동장치(AEBS)는 운전자가 제동하지 못할 경우 차량이 스스로 브레이크를 작동시켜 충돌을 막거나 피해를 줄인다.
기술 효과를 보여주는 자료도 있다. 일본 국토교통성이 2022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페달오조작방지장치를 장착할 경우 관련 사고가 63% 줄었고, 여기에 자동긴급제동장치까지 함께 탑재하면 예방 효과는 90% 이상으로 높아졌다. 일본은 2017년 고령 운전자 사고 방지 기능을 갖춘 ‘서포카S’ 차량을 도입하고 보조금을 통해 차량 교체를 지원했다. 이 차량의 10만 대당 인명 사고 건수는 일반 승용차보다 41.6%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기술을 조건으로 거는 방식 역시 비용 부담과 적용 기준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 어떤 연령대부터, 어떤 수준의 장치를 의무화할 것인지에 따라 정책 성격은 크게 달라진다. 소득 수준이나 지역 여건에 따라 체감 부담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도 형평성 논란으로 이어진다.
결국 쟁점은 ‘전면 제한’과 ‘무조건 허용’ 사이의 중간 지대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모인다. 대중교통 접근성이 낮은 지역이나 생계형 운전자의 현실을 외면하기도 어렵고, 사고 위험을 방치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고령자 사고가 늘어나는 흐름 속에서, 면허 관리와 기술 기준을 어떻게 조합할지에 대한 정책 설계가 더 이상 미뤄지기 어려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하성우 기자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