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지역 택시회사가 최저임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소정 근로시간’을 대폭 줄이는 방식으로 체결한 임금협정이 무효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택시업계에 관행처럼 이어져 온 ‘명목상 근로시간 단축’에 법원이 제동을 건 셈이다.
부산역 앞 택시승강장에서 택시들이 승객을 기다리고 있다.
부산지역 택시회사가 최저임금 인상에 대응하기 위해 소정 근로시간을 줄이는 방식으로 체결한 노사 임금협정이 무효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는 택시기사 22명이 소속 회사인 A사를 상대로 낸 임금 소송에서 원심의 원고패소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번 소송의 출발점은 택시업계 특유의 임금 구조다. 택시기사들의 수입은 회사에 내는 ‘사납금’, 회사가 지급하는 ‘기본급’, 그리고 사납금을 넘겨 벌어들인 ‘초과 수입’으로 구성된다. 최저임금이 오를수록 회사는 기본급을 인상해야 하고, 그만큼 사납금이나 임금 체계를 조정해야 하는 압박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기사들은 기본급을 크게 올리기보다는 초과 수입을 더 가져가는 구조를 선호해 왔고, 업계에서는 이를 맞추기 위해 ‘명목상 근로시간’을 줄이는 방식이 관행처럼 자리 잡았다.
부산 택시 노사의 대표 단체인 부산택시운송사업조합과 전국택시노조연맹 부산본부는 2008년, 2013년, 2018년 세 차례에 걸쳐 임금협정을 통해 소정 근로시간을 단계적으로 줄였다. 1인 1차제 기준으로 2005년 일 6시간 40분이던 근로시간은 2008년 5시간 40분, 2013년 4시간 40분, 2018년에는 4시간까지 줄었다. 형식상 근로시간이 줄어들면 최저임금 산정 기준도 함께 낮아지는 구조다.
하지만 실제 운행 환경이나 노동 강도가 그에 맞춰 줄어들었는지는 다른 문제였다. 이미 2019년 4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실제 근로환경 변화 없이 소정 근로시간만 줄이는 것은 최저임금 규정을 피하기 위한 탈법”이라며 이런 방식의 근로시간 단축을 무효로 본 바 있다. 이번 사건 역시 그 연장선에서 판단이 내려졌다.
A사 소속 기사들은 “최저임금에 맞는 임금과 퇴직금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서는 일부 청구가 받아들여졌지만, 2심은 택시 요금과 운행 환경 변화 등을 고려할 때 근로시간 단축에 합리적 이유가 있다며 회사 측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2008년과 2013년의 단축은 유효하다고 보면서도, 2018년 단축에 대해서는 무효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2018년 임금협정이 최저임금법 개정에 따른 특례조항 적용을 피하기 위한 탈법행위일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특히 해당 협정으로 소정 근로시간이 2005년 기준의 절반 수준인 4시간까지 줄어든 점을 지적하며, 이는 실제 전일제 택시기사들의 근로시간과 “현저한 괴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택시요금 인상이나 호출 애플리케이션 활성화 등 환경 변화를 감안하더라도, 하루 4시간은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취지다.
이번 판결로 대법원은 최저임금 인상 국면에서 ‘형식적인 근로시간 조정’이 어디까지 허용되는지에 대해 다시 한 번 기준을 제시했다. 실제 근로 형태와 괴리된 소정 근로시간 설정은 임금 산정의 기준으로 인정되기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2018년 임금협정은 최저임금법 적용을 잠탈하기 위한 탈법적 성격이 강하다고 판단했다는 게 이번 판결의 핵심이다.
파기환송에 따라 부산고법은 2018년 임금협정이 무효라는 전제 아래, 기사들에게 지급되지 않은 최저임금 차액과 퇴직금 등을 다시 산정해야 한다. 이번 사건은 특정 회사의 분쟁을 넘어, 유사한 방식으로 근로시간과 임금 구조를 설계해 온 택시업계 전반에 공통된 법적 기준을 재확인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실제 근로시간과 임금 체계의 정합성이 어디까지 확보돼야 하는지가 다시 쟁점으로 떠올랐고, 기존 임금협정 구조 역시 법적 검증의 대상이 됐다.
이병문 기자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