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새벽, 서울 시내버스 파업이 시작됐다.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 서울시버스노동조합(이하 서울버스노조) 소속 조합원 약 1만5000명이 운전석을 비웠다. 그런데 오전 7시가 넘어서도 일부 노선의 버스는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간격으로 정류장을 지나쳤다. 이유는 무엇인가. 답은 서울시가 매년 운용하는 '시내버스 운영평가' 체계에 있었다.
서울 송파구 버스공영 차고지에 시내버스들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다. (사진=교통일보 오승안 기자)
서울시는 2004년 시내버스 준공영제 도입 이후 매년 운영사 전체를 대상으로 1000점 만점의 운영평가를 실시한다. 평가 결과는 회사별 순위로 환산되고, 이 순위가 연말 성과이윤 배분의 핵심 기준이 된다.
서울시 대중교통과에 따르면 2025년 기준 서울 시내버스 운영사는 65개 업체이며, 준공영제 하에서 각 회사는 운행 원가를 시로부터 보전받되, 순위에 따른 성과이윤은 별도로 배분받는다. 상위권과 하위권 간 성과이윤 격차는 연간 수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평가 항목 가운데 '시정협조도' 배점은 300점으로, 전체의 30%를 차지한다. 이 항목 안에 비상 상황 협조 여부에 따라 최대 100점의 가점을 부여할 수 있다는 규정이 포함돼 있다. 100점은 전체 평가 점수의 10%에 해당한다.
유재호 서울버스노조 사무부처장은 "하위권에 머물던 회사가 이 가점 하나로 중상위권에 진입할 수 있다. 예컨대 56위였던 삼성여객이 17위까지 오를 수 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 수치는 노조가 자체 산정한 것으로, 본지가 서울시에 공식 확인을 요청했으나 평가 세부 산식에 대한 답변은 이날까지 받지 못했다.
문제는 이 구조가 파업 국면에서 어떻게 현장에 내려앉는가 하는 점이다. 서울버스노조가 공개한 우신운수 전무 명의의 단체 문자는 그 경로를 보여준다. 문자에는 "서울시 운영평가에 따라 회사가 존립한다", "이번 총파업과 관련해 30% 이상 차량 운행을 하는 회사에 시정협조도 가점이 부여된다고 들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운행 참여를 '자발적 지원'으로 표현하면서도, 운행 참여자를 선동하거나 방해하는 행위에 대한 조치 가능성, 배차 시간 미준수 시 불이익, 정상 운행 전환 이후 파업 참여자의 해당일 승무 배제 가능성을 함께 명시했다.
파업에 참여했다가 이 문자를 받았다는 서울 소재 한 버스회사 소속 운전기사 박모씨(57)는 "파업이면 파업이지, 30% 채우러 나오라는 게 무슨 자발이냐"라고 말했다. 그는 "회사가 평가 점수 얘기를 꺼내면 기사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 성과이윤이 회사 운영에 영향을 미치면 결국 고용 문제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분위기가 있다"고 전했다. 같은 회사에서 10년 가까이 근무한 또 다른 기사 김모씨(63)도 "문자 이후 분위기가 달라졌다. 나오는 사람, 버티는 사람이 나뉘었다"고 했다.
서울시의 공식 입장은 직접 지시와의 선을 긋는 방식이다. 서울시 대중교통과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파업 기간 중 특정 운행 비율을 달성하도록 개별 회사에 지시한 사실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운영평가 매뉴얼 상 비상 상황 협조 여부가 점수에 반영될 수 있는 조항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부인하지 않았다. 평가 기준과 가점 발동 조건을 담은 매뉴얼 원문은 현재까지 공개되지 않은 상태다. 본지는 이날 해당 매뉴얼에 대한 정보공개청구를 접수했다.
이 구조를 법적 시각에서 들여다보면 쟁점은 더욱 뚜렷해진다. 고려대 노동법 전공 박모 교수는 "사용자가 직접 복귀를 지시하지 않더라도, 파업 참여 여부와 사실상 연동되는 경제적 불이익 구조가 설계돼 있다면 간접적인 단체행동권 침해로 볼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헌법 33조가 보장하는 단체행동권은 그 행사 자체로 인해 불이익을 받지 않을 권리를 포함한다. 지방자치단체의 행정 평가 체계가 이 권리와 충돌하는지는 검토가 필요한 지점"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해당 교수는 가점 조항의 구체적 내용을 확인하지 못한 상태에서의 견해임을 전제했다.
파업 기간 중 일부 버스가 운행되는 현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3년 4월 서울 시내버스 파업 당시에도 일부 노선은 정상 운행에 근접한 배차 간격을 유지했다. 서울연구원이 2023년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파업 당일 실제 운행률은 노선별로 편차가 컸으며, 일부 회사는 60% 이상의 차량을 투입한 것으로 기록됐다.
고민철 서울시내버스운송사업조합 관계자는 "준공영제 구조에서 운영사는 행정 평가 결과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평가 점수가 보조금 산정과 성과이윤에 연동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파업 시에도 운행을 유지하려는 유인이 제도 안에 내재돼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다만 각 운영사가 평가 점수를 의식해 운행 여부를 결정하는 것과 서울시가 이를 직접 유도하는 것은 구분해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시내버스 파업 사태가 확대되면서 서울역 버스환승센터에는 이날 오전부터 시민 대기 행렬이 이어졌다. 출근길 버스를 기다리던 직장인 최모씨(34)는 "버스가 오긴 오는데 언제 올지 몰라서 그냥 서 있는 것"이라며 "파업이라고 해놓고 몇 대는 다니니까 더 헷갈렸다"고 했다.
이번 파업의 공식 쟁점은 임금 인상률, 정년 연장, 임금 차별 해소, 디지털 운행기록장치(DTG)를 활용한 노동 감시 문제다. 노조는 이날 오전 브리핑에서 통상임금 문제는 대법원 확정판결 이후 별도로 다툴 사안이라는 전제를 명확히 했다.
서울시내버스운송사업조합에 따르면 노사 협상은 이날 오후 3시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서 재개된다. 서울버스노조 장영욱 국장은 "협상은 사측과 노조 간 직접 교섭으로 진행된다"고 밝혔다.
이번 파업은 임금과 노동조건을 둘러싼 교섭의 문제이지만, 그 배경에는 서울시의 준공영제 평가 구조라는 또 다른 층위가 있다. 서울시의 행정 평가 기준이 회사를 경유해 현장의 운전기사에게 '운행 선택'의 문제로 도달하는 방식, 그리고 그 구조가 파업이라는 합법적 기본권 행사 국면에서 어떤 방향으로 작동하는지는 협상 타결 여부와는 별개로 제도적 검토가 요구되는 사안이다. 평가 매뉴얼 원문과 가점 적용 실적, 회사별 성과이윤 배분 내역은 현재 공개되지 않은 상태다. 이 정보들이 공개되는 시점에 구조의 실체가 비로소 온전히 드러날 것이다.
시내버스 파업이 이어지는 가운데 서울역 버스환승센터에서 시민들의 대기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교통일보 오승안 기자)
오승안 기자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