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벽지노선 지원에 매년 300억원 이상을 투입하고 있지만 2020년 이후 시외·고속버스 노선 491개가 폐지됐다. 지원 확대와 노선 축소가 동시에 이어지는 구조 속에서 장거리 대중교통망을 어떻게 유지·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정책 재설계 요구가 커지고 있다.
서울 서초동 서울남부터미널에 시외·고속버스들이 주차돼 있다. (사진=연합뉴스)2020년 이후 전국에서 사라진 시외·고속버스 노선이 491개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8일 국토교통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4년 9월까지 폐지된 시외버스 노선은 414개, 고속버스 노선은 77개로 집계됐다. 코로나19 이후 이동 수요가 회복 국면에 들어섰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장거리 버스망 축소는 구조적인 흐름으로 굳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도별 추이를 보면 감소세는 쉽게 꺾이지 않았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는 매년 70~88개 노선이 폐지됐고, 코로나19 종식 이후인 2023년에는 오히려 111개로 급증했다. 2024년에는 66개로 다소 줄었지만, 올해도 9월까지 시외·고속버스 69개 노선이 사라졌다. 수요 회복 국면에서도 노선 축소가 멈추지 않았다는 점에서, 단기 충격이 아닌 구조적 문제라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지역별로도 특정 권역의 문제로 보기 어렵다. 시외버스 노선 폐지는 경기도가 122건으로 가장 많았고, 경남 102건, 강원 95건, 전남 62건 순으로 집계됐다. 수도권과 영남, 강원·호남을 가리지 않고 장거리 버스망이 전반적으로 얇아지고 있는 셈이다. 고속버스 역시 같은 기간 77개 노선이 줄었으며, 특히 2022년 한 해에만 21개 노선이 폐지됐다.
정부는 2020년부터 수익성이 낮지만 교통 소외지역 주민 이동에 필수적인 노선을 유지하기 위해 ‘벽지노선 지원사업’을 본격화했다. 사업 첫해 282억원을 투입한 데 이어, 이후 매년 300억원 이상을 지원해 왔다. 지난해 10월부터는 지원 대상을 단거리 시외버스에서 장거리 직행형 시외버스와 고속버스까지 확대했다. 그러나 지원 규모 확대에도 불구하고 노선 폐지가 이어지면서, 현행 지원 방식만으로는 흐름을 되돌리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온다.
경영 지표 역시 업계의 구조적 부담을 보여준다.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시외버스 회사들의 총매출은 1조651억원으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1조3896억원)보다 23.4% 감소했다. 고속버스 업계 매출도 지난해 4402억원으로, 2019년(5851억원)의 75.3% 수준에 머물렀다. 수요 회복 속도가 더딘 상황에서 고정비 부담이 누적되면서, 노선 유지 자체가 경영 리스크로 작용하는 구조다.
문제는 현행 지원 체계가 개별 노선의 적자를 보전하는 방식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생활권 연결성이나 대체 교통수단 유무를 기준으로 ‘망’ 차원에서 관리하기보다, 노선 단위로 연명시키는 구조에서는 수요가 조금만 흔들려도 폐지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원 대상을 확대하더라도, 어떤 노선을 필수 교통망으로 유지할지에 대한 기준이 정리되지 않으면 축소 흐름은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외·고속버스는 철도나 항공이 닿지 않는 지역을 잇는 대표적인 장거리 대중교통수단이다. 특히 비수도권에서는 병원·행정·교육 거점 접근이 특정 노선 하나에 좌우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노선 폐지는 단순한 선택지 감소를 넘어, 지역 생활권 자체를 축소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엄태영 국민의힘 의원은 “시외·고속버스는 대표적인 장거리 대중교통수단인 만큼, 노선 폐지로 교통 사각지대가 생기지 않도록 정부가 지속적인 관리와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쟁점은 ‘얼마를 더 지원할 것인가’보다, 지원이 작동할 교통망을 어떤 기준으로 정하고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에 가깝다.
업계 안팎에서는 지원사업이 ‘폐지 방지’에만 초점이 맞춰질 경우, 운행 횟수 축소나 시간대 공백이 늘어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용자 불편이 커지면 다시 수요가 줄고, 이는 추가 노선 축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으로 연결될 수 있다. 단순 존치가 아니라 최소 서비스 수준을 함께 관리하는 방식으로 정책 틀을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노선 폐지 통계는 버스 회사의 손익 문제를 넘어, 지역 접근성 변화의 지표이기도 하다. 한 번 끊긴 연결은 대체 수단이 마련되기 전까지 공백으로 남고, 그 비용은 주민 이동과 지역 경제 전반에 분산된다. 벽지노선 지원이 ‘사업자 보전’에 머무를지, ‘국가 교통망 유지’ 정책으로 진화할지는 향후 국회 논의와 예산 설계에 달려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병문 기자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