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는 9월 8일 서부간선도로 평면화 공사를 중단하고 도로 용량 확대와 연결성 강화로 방향을 바꿨다. 그러나 교통 모니터링 자료와 실시설계 보고서 속도 예측치 등 핵심 근거가 뒤늦게 공개되면서 시민 설득 실패가 다시 확인됐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서부간선도로 오목교 공사 현장. 교통체증으로 차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사진=교통일보)
서부간선도로 평면화는 박원순 전 시장 시절 설계됐다. 안양천을 따라 놓인 상부 8.1km 구간을 평면화해 보행과 녹지를 늘리고, 장거리·고속 통행은 2021년 개통한 유료 지하도로가 맡도록 하는 이중 구조였다. 실제 착공과 집행은 오세훈 시장 때 이어졌다. 행정의 연속성은 유지됐지만 시민을 설득하는 과정은 처음부터 부실했다.
많은 시민이 헷갈린 부분은 '지하차도 평면화'의 의미였다. 오목교·오금교·고척교·광명교 지하차도는 본선 도로가 아래로 내려가고 그 위로 다른 도로가 교차하는 굴다리형 입체 교차로였다.
서울시는 이 구조를 걷어내 양쪽 도로를 같은 높이에서 만나게 하는 공사를 추진했다. 4개 대상 중 오목교를 첫 단계로 착공했으나 민원과 혼잡이 폭증하면서 공사가 중단됐고, 나머지 3곳도 이번 정책 전환으로 사실상 무산됐다.
수치는 혼잡의 심각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시가 6월 15일 오목교 동측 지하차도를 차단한 뒤 실시한 교통 모니터링 결과, 양평교→오목교 구간 차량 평균 속도는 17.7km/h에서 7.5km/h로 떨어졌다. 불과 석 달 만에 혼잡이 두 배 가까이 심해지자 시는 결국 방향을 틀었다. 시민 입장에서는 "왜 미리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느냐"는 불신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시가 내놓은 대안은 도로 용량 확대다. 중앙분리대를 철거해 4차로를 5차로로 확장하고 출퇴근 시간대에는 가변차로로 운영하겠다는 계획이다. 도로용량편람 기준을 적용하면 시간당 처리 차량이 6,800대에서 8,500대로 25% 늘어난다는 수치도 제시됐다. 실시설계 보고서에는 공사 시행 시 통행속도가 하행 평균 7.6km/h, 상행 평균 5.0km/h 빨라진다는 분석도 담겨 있었다.
그러나 이 내용은 평면화 추진 단계에서도, 정책 전환 발표 직후에도 시민에게 공개되지 않았다. 취재 과정에서야 해당 수치가 보고서에 존재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시는 공사 기간 중 안양천로와 지하도로를 대체도로로 안내하고 신호 조정과 안내 요원 배치로 혼잡을 줄이려 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하루 최대 12만 대가 오가는 구간에서 실효성은 없었다. 서울~광명 고속도로 개통이 2028년으로 밀리면서 대체도로 부족 문제는 구조적으로 해결되지 않았고, 시는 결국 광명 고속도로 개통 이후로 평면화 재검토를 미뤘다.
주민 설득 과정의 한계도 드러났다. 시는 2018년 이후 17차례 주민 설명회를 열었다고 밝혔지만, 공사 완료 시 통행 시간이 몇 분 줄어드는지, 보행 접근성이 얼마나 개선되는지 같은 수치 기반 설명은 끝내 제시되지 않았다.
시 관계자는 "시민 반대 때문에 정책을 뒤집은 것이 아니라 불편 해소를 위한 합리적 대안 수정"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수천억 원이 투입된 사업이 석 달 만에 멈추자 행정 신뢰는 이미 흔들렸다.
만약 속도 개선 전망과 교통효과 분석이 사전에 투명하게 공유됐다면, 시민은 단기 불편을 감수할 명분을 더 분명히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시는 수치를 제때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근거 없는 추진, 근거 없는 철회"라는 비판을 자초했다.
이번 사례는 이미 "시민 반대가 거세면 대규모 정책도 중단될 수 있다"는 선례로 남았다. 향후 서울시가 데이터 기반의 설득과 투명성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교통 정책 전반에서 '갈팡질팡 행정'이라는 불신의 꼬리표는 더 짙어질 수밖에 없다.
오승안 기자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