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는 8일 서부간선도로 평면화 공사를 전면 중단하고 도로 용량 확대와 연결성 강화로 방향을 바꿨다. 그러나 추진 과정과 전환 과정 모두에서 교통량·속도·지체시간 같은 핵심 근거 자료가 공개되지 않았다. 시민은 설득되지 않았고, 행정의 신뢰성마저 흔들리고 있다.
정책 전환이 발표된 직후의 서부간선도로 오목교 인근. 평면화 공사는 멈췄지만 차량 정체는 여전하다. (사진=교통일보)
서부간선도로는 안양천을 따라 놓인 상부 8.1km 구간으로, 박원순 전 시장 시절 평면화 구상이 설계됐다. 보행과 녹지를 늘리고 장거리·고속 통행은 2021년 개통한 유료 지하도로가 맡도록 하는 이중 구조였다. 실제 착공과 집행은 오세훈 시장 때 이어졌다. 행정의 연속성 속에서 방향은 유지됐지만, 시민을 설득하는 과정은 처음부터 부실했다.
많은 시민이 혼동하는 부분이 '지하차도 평면화'다. 오목교·오금교·고척교·광명교 지하차도는 차량이 신호 없이 통과하도록 만든 굴다리형 입체 교차로였다.
서울시는 이 입체 구조를 걷어내고 양쪽 도로를 같은 높이에서 만나게 하는 공사를 추진했다. 오목교를 첫 단계로 착공했지만, 혼잡과 민원이 폭증하면서 나머지 3곳 역시 순차적으로 무산된 셈이 됐다.
공사 전부터 전문가들의 우려는 컸다. 하루 최대 12만 대가 오가는 도로에서 지하차도를 없애고 신호 교차로를 도입하면 정체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반복됐다. 대체도로 역할을 기대했던 서울~광명 고속도로 개통은 당초 2024년에서 2028년으로 4년이나 밀렸다.
그러나 시는 이 부분을 수치로 설명하지 못했다. 공사 완료 후 통행 시간이 얼마나 줄어들고 보행 접근성이 어떻게 개선되는지, 지역 상권에 어떤 효과가 있을지에 대한 구체적 예측 자료 없이 "녹지가 늘어난다"는 구호만 반복했다.
흙으로 메워진 오목교 하행선 지하도로. 지하도로를 우회하는 차량들이 끝도 없이 길게 줄을 서 있다. 서울시는 지하도로를 메운 흙을 다시 파내고 원상복구한다는 방침이다. (사진=교통일보)6월 오목교 지하차도가 폐쇄되자 불편은 현실이 됐다. "퇴근길 1km에 20분이 걸린다", "회사까지 가는 데 두 배의 시간이 든다"는 하소연이 이어졌고 온라인에는 분노가 쏟아졌다. 살인 협박 사건까지 발생하며 상황은 악화됐다. 시가 신호 최적화·안내 인력 배치·우회 안내 등 대책을 내놨지만 체감 효과는 거의 없었다.
중단을 선언한 이후에도 문제는 남았다. 시는 도로 용량을 시간당 6,800대에서 8,500대로 늘리겠다는 수치를 공개했지만, 평균 속도가 얼마나 빨라지고 통행 시간이 몇 분 줄어드는지 같은 시민 체감 지표는 빠졌다.
지상 구간을 줄이면서 결국 유료 지하도로 이용을 늘리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상부에는 신호로 흐름이 끊기고 하부에는 통행료가 붙는 구조가 만들어지면서 "돈벌이 정책"이라는 불만이 온라인에서 퍼졌다. 서울시는 이에 대한 명확한 해명을 내놓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행정 신뢰다. 수천억 원이 투입된 사업이 반대 여론에 밀려 중도 철회되면서 "시민이 반대하면 언제든 뒤집힌다"는 선례가 만들어졌다. 물론 시민 의견 수렴은 중요하다. 그러나 정책이 여론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행정이 먼저 명확한 데이터와 논리로 판단 근거를 설명해야 한다.
청계천 복원은 교통 혼잡 우려에도 불구하고 "도심 보행 회복"이라는 장기 비전을 끊임없이 어필했고, 실제 성과가 입증되며 반대 여론이 수그러들었다. 서부간선도로 사업에는 그 과정이 통째로 빠져 있었다. 공사 기간 중 불편이 불가피하다면 장기적 편익을 수치로 보여줘야 시민이 단기 고통을 감수할 명분이 생긴다.
앞으로 서울시는 교통량·속도·지체시간 같은 핵심 지표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설득 과정을 갖춰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서부간선도로 평면화처럼 "갈팡질팡 행정"이라는 불신의 꼬리표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오승안 기자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