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방받은 향정신성의약품을 복용한 뒤 운전한 혐의로 방송인 이경규 씨가 검찰에 송치됐다. 합법 처방약이라도 ‘정상 운전이 어려운 상태’로 판단되면 처벌될 수 있다는 도로교통법 기준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약물 운전 혐의로 조사를 받은 방송인 이경규 씨가 경찰 조사를 마친 뒤 취재진 앞에 서 있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약물 운전 혐의(도로교통법 위반)로 방송인 이경규(65) 씨를 불구속 송치했다고 3일 밝혔다. 이 씨는 지난달 8일 강남구 논현동에서 처방받은 약물을 복용한 상태로 운전하다가, 차량 오인 운전으로 절도 의심 신고를 받았고 약물 간이시약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결과를 토대로 경찰 조사를 거쳐 송치가 이뤄졌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불법 약물’이 아니라 ‘처방약’이라는 점이다. 도로교통법 제45조는 운전자가 마약·대마·향정신성의약품 등 약물의 영향으로 정상적으로 운전하지 못할 우려가 있는 상태에서는 운전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위반 시 3년 이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법 조문은 약물의 적법성보다 ‘운전 가능 상태’를 기준으로 삼는다. 처방에 따른 합법 복용이라 하더라도, 실제 운전에 지장을 줬다면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는 구조다.
수사와 재판에서 쟁점은 결국 ‘정상 운전이 가능했는지’다. 단순히 약물이 검출됐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위법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 판단 과정에서는 인지능력 저하 여부, 보행 시 비틀거림, 졸림·집중력 저하 같은 신체·행동 징후, 현장 경찰관의 관찰 내용, 간이시약 검사와 국과수 감정 결과, 기존 판례의 판단 기준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된다. 약물 성분이 확인되더라도, 그것이 운전 능력에 실질적 영향을 미쳤는지가 입증의 관건이 된다.
판례 흐름 역시 ‘약물 복용 사실’ 자체보다 ‘운전 능력 저하의 정도’에 초점을 맞춰 왔다. 법원은 음주운전과 달리 약물 운전의 경우 수치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만큼, 운전 당시의 구체적 상태와 행태, 주변 정황, 사고 위험성 등을 종합해 판단해 왔다. 이 때문에 같은 성분이 검출됐더라도, 운전자의 상태와 상황에 따라 무죄와 유죄 판단이 엇갈린 사례들도 적지 않다. 수사기관이 현장 관찰과 영상, 진술 확보에 공을 들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의학적 변수도 작지 않다. 향정신성의약품은 중추신경계에 작용해 불안·불면·흥분 등을 완화하는 대신 졸림, 반응속도 저하, 판단력 저하 같은 부작용을 동반할 수 있다. 대표적인 성분으로는 벤조디아제핀계 약물이 있다. 불안장애나 불면증 치료에 널리 쓰이지만, 개인에 따라 졸림과 집중력 저하가 나타날 수 있다. 반감기 역시 약물과 용량에 따라 수 시간에서 20시간 이상까지 차이가 난다. 체내 약물 농도가 충분히 낮아질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문제는 개인차다. 같은 약을 복용해도 연령, 체중, 기저질환, 복용 기간, 다른 약물과의 병용 여부에 따라 영향이 다르게 나타난다. 장기간 복용해 ‘익숙하다’고 느끼는 경우에도, 신체 조건 변화나 복합 처방에 따라 예상치 못한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 의료계에서는 향정신성의약품을 복용 중인 환자가 운전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복용 시점과 용량, 반감기 등을 기준으로 반드시 의사나 약사와 사전에 상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번 사건은 제도적 안내 체계의 한계도 드러냈다. 향정신성의약품은 정신과뿐 아니라 정형외과·내과 등에서도 근이완, 통증 완화, 위장관 증상 완화 등의 목적으로 처방되는 경우가 있다. 환자가 자신이 ‘운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약’을 복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지하지 못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실제로 복약 안내 과정에서 ‘운전 주의’ 문구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일상 복용 약으로 가볍게 여기는 사례도 반복되고 있다.
약사단체와 의료계에서는 처방 단계에서 운전 가능 여부에 대한 설명과 경고를 더 명확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순한 복약지도 문구를 넘어, 운전 여부를 직접 확인하고 대체 약물이나 복용 시간 조정을 안내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수사·처벌 중심의 접근만으로는 유사 사례를 줄이기 어렵다는 문제의식도 함께 제기된다.
법의 기준은 비교적 분명하다. ‘처방약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 약의 영향으로 정상 운전이 가능했느냐’가 판단의 핵심이다. 다만 현장에서는 약물 성분, 복용 시점, 운전 당시의 상태를 둘러싼 다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운전자 개인의 주의 의무뿐 아니라 의료 현장의 설명 책임과 제도적 안내 체계까지 함께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한약사회 부회장을 지낸 민필기 경기도약사회 분회장협의회장은 “꼭 수면장애가 아니더라도 정형외과에서 근이완 등을 위해 향정신성의약품을 처방하는 경우가 있고, 속이 쓰려 내과에 가도 해당 약품을 처방받을 수 있다”며 “환자가 본인이 운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약을 복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운전자에게 향정신성의약품을 처방할 때는 복용 후 운전 가능 여부에 대한 고지와 상담이 강화돼야 하고, 대국민 홍보도 함께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하성우 기자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