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예고 하루 전, 여덟 시간의 협상 끝에 버스는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멈추지 않은 것은 버스만이 아니다. 매년 같은 자리에서 같은 방식으로 충돌하는 이 구조도 멈추지 않았다.
김해 시내버스. (사진=연합뉴스)
김해 시내버스 가야IBS·동부교통·김해BUS·태영고속 등 4개 업체 노사는 4일 오후 경남지방노동위원회 2차 조정에서 8시간여의 협상 끝에 밤 10시께 합의에 도달했다. 5일 첫차부터 전면 파업에 돌입한다는 노조의 예고는 철회됐고, 56개 노선 195대는 예정대로 굴렀다. 실행에 옮겨졌다면 2000년 이후 25년 만의 파업 사례가 됐을 터였다.
합의 내용은 세 갈래다. 가야IBS·동부교통·태영고속 3개 업체는 월평균 임금을 25만원 인상하되 통상임금 문제는 별도 협의로 남겼고, 태영고속은 타 업체와의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해 2026년까지 단계적으로 올리기로 했다. 김해BUS는 물가상승률과 동일한 2.3% 인상에 노조 복지비 연간 3000만원 지급을 더했다. 단체협약 쪽에서는 준공영제 시행 경과를 노사가 함께 공유하고, 7월부터 학교 앞 30㎞·시내 구간 50㎞ 이하 속도를 지키는 '3050 운행'을 시행하기로 했다.
숫자만 보면 봉합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합의가 나오기까지의 과정은 이 구조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지난해 10월 시작된 2025년 임금·단체협약 교섭은 아홉 차례를 거듭하며 번번이 결렬됐다. 노조는 통상임금 17만원 적용과 월 26만5500원 인상을 요구했고, 사측은 통상임금과 물가상승률 2.3%를 더한 월 27만원 인상안으로 맞섰다.
표면적인 수치만 보면 양측의 간격은 크지 않았다. 갈등의 본질은 금액 차이가 아니라 통상임금 산정 방식과 적용 기준을 둘러싼 해석의 충돌이었다. 최종 합의선 25만원은 사측 제시액보다 소폭 낮은 수준으로, 임금 항목 자체보다 구조적 불신이 협상을 더 오래 잡아끌었음을 보여준다.
노조 측은 협상 내내 재정 지원 체계의 불투명성을 문제 삼았다. 김해시내버스노동조합 관계자는 "운송원가 산정 과정에 노조가 참여하지 못하면 사측이 제시하는 경영 압박 논리를 검증할 방법이 없다"며 "임금 인상이 가능한 구조인지 아닌지를 노사가 같은 숫자로 확인할 수 있어야 협상이 제대로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합의에는 2025년 운송원가 산정 시 노조 추천 회계사를 공동 참여시킨다는 조항이 포함됐다. 구조적 불신이 협상의 발목을 잡아온 현실이 이 조항 하나에 압축돼 있다.
사측 역시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버스 4개사 관계자는 "요금 수입은 정해져 있고 유류비·인건비는 올라가는 구조에서 노조 요구를 감당하려면 지자체 재정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지금처럼 재원 없이 사측만 감당하는 구조에서는 협상 범위 자체가 좁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홍태용 김해시장은 파업 예고 당시 "해마다 시민들의 이동 편의를 협상 수단으로 파업 예고를 반복하는 상황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장의 안타까움과 별개로, 이 반복을 만들어내는 구조에 대한 답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 반복의 핵심에는 준공영제 미도입이 있다. 김해 시내버스는 요금 수입과 제한적 지자체 지원에 수입을 의존하는 구조에 가깝다. 승객 수와 요금 체계에 수입이 직결되는 환경에서 인건비와 유류비 상승은 곧장 경영 압박으로 이어지고, 재정 보전 장치가 빈약하면 노사 양측 모두 임금 협상에서 접점을 찾기가 구조적으로 어렵다.
고민철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 과장은 "지방 도시에서는 버스 요금 수입만으로 인건비와 차량 운영비를 안정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구조가 많은 것이 현실"이라며 "노사 임금 협상 역시 결국 지역 교통 재정 구조와 연결될 수밖에 없어, 재정 구조에 대한 논의 없이 임금 문제만으로 갈등을 풀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준공영제가 만능 해법인 것도 아니다. 경남 창원시는 2021년 준공영제를 도입했지만 이후에도 두 차례 파업이 반복되면서 준공영제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은 2004년 전국 최초로 준공영제를 도입했지만 2021년부터 2025년까지 연평균 6672억원의 적자를 기록했고, 임금 1%가 오를 때마다 110억~120억원의 추가 재정 부담이 발생하는 구조가 고착됐다. 준공영제는 재정 안정성을 높이는 대신 지자체 부담을 키우고 업체 경영 효율화 유인을 약화시킨다는 비판을 함께 안고 있다.
김해시는 2022년 노·사·정 합의서에 따라 올해 4월 말 준공영제 관련 용역을 마무리하고 하반기 준비 기간을 거쳐 2026년 김해형 준공영제를 시행할 예정이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 어느 노선부터, 재원은 어떻게 조달할지에 대한 구체적 설계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준공영제 도입이 예고돼 있음에도 이번 교섭에서 노사 불신이 해소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파업 예고가 교섭 관행으로 굳어지는 구조도 문제다. 노조는 파업 가능성으로 교섭력을 끌어올리고, 사측은 경영 부담을 방패 삼아 협상 범위를 좁힌다. 지자체는 수송 안정성을 명분으로 막판에 뛰어든다.
시민은 그때마다 교통 혼란의 불안을 떠안는다. 이번에도 김해시는 전세버스 50대·15개 임시노선·경전철 하루 12회 증편이라는 비상수송대책을 꾸렸다. 실제로 가동되지 않았으니 다행이지만, 해마다 이 준비를 반복하는 행정 비용과 시민 불안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손실이다.
파업은 넘겼다. 그러나 이 합의는 내년 봄에도 같은 자리에서 같은 싸움이 벌어질 것이라는 예고이기도 하다. 김해형 준공영제의 설계가 구체화되지 않는 한, 그리고 노사가 같은 숫자를 보며 협상 테이블에 앉는 구조가 만들어지지 않는 한, 벼랑 끝 교섭의 계절은 해마다 돌아올 것이다.
하성우 기자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