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 업종의 하나로 대부분 어렵고 힘든 삶을 살고 있는 택시기사들 중엔 자신도 모르게 '스톡홀름 신드롬'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런 분석을 가능하게 한 것은 최근 한 택시기사가 현금수송차량 탈취범이 도주하는 것을 아무 대가도 없이 도와줬기 때문.
지난 20일 새벽 부산으로 현금수송차량 탈취범이 부산에 잠입했다. 탈취범으로 공개 수배된 허원혁은 사전 정보를 입수한 경찰의 검문 검색에도 불구하고 택시 트렁크에 몸을 숨겨 유유히 검문을 통과했다. 이 영화 같은 일은 택시운전 기사가 허원혁의 은닉을 도와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허 씨는 경찰의 검문이 시작된 것을 알고는 자신이 사기전과로 수배돼 있는데 부산에 가야 합의를 봐 사기 사건을 해결 할 수 있다고 택시기사에게 협조를 구하고 트렁크 속에 숨었다. 검문 경찰과 마주친 택시 기사는 허 씨가 검문소 조금전에서 내렸다고 거짓말을 했고, 이를 믿은 경찰은 트렁크 문을 열어보지 않는 채 검문을 통과시켰다.
일반인의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이 일은 택시 기사가 허 씨의 '공범'일 수 있다는 의심을 갖게한다. 그러나 경찰 조사결과 택시기사와 허 씨는 공범 관계는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왜 택시 기사가 허 씨를 트렁크에 숨겨주고 경찰에 거짓말까지 하는 비이성적인 행동을 했을까?
우선, 당시 허 씨는 가방에 2억 원 가까운 현금을 갖고 있었다. 이 때문에 허 씨가 택시기사에게 많은 돈을 주고 자신을 숨겨 줄 것을 요구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이에 대해 택시 기사는 경찰에서 허씨로부터 서울에서 부산까지 택시요금 38만 원을 받은 것 밖에 없다고 진술했다. 경찰 조사결과로도 택시기사가 허 씨를 은닉해주는 대가로 더 많은 돈을 받았다는 증거나 정황은 발견하지 못했다.
흥미로운 점은 만약 택시 기사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위험을 무릅쓰고 허씨를 은닉해준 택시기사의 동기다. 설령, 택시기사가 "자신이 (탈취범이 아니라) 사기로 수배돼 지금 합의 하러 가는 길"이라는 허 씨의 거짓말에 속았다 하더라도 검문중인 경찰에 거짓말까지 한다는 건 일반인의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찰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스톡홀름 신드롬'의 범죄 심리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스톡홀름 신드롬'은 인질이 인질범들에게 동화돼 인질범들에게 동조하는 비이성적 현상을 가리키는 범죄심리학 용어다. 인질사건에서 인질로 잡힌 사람들이 인질범들에게 정신적으로 동화돼 오히려 자신들을 볼모로 잡은 범인들에게 호감과 지지를 나타내는 반면 자신들을 구출하려는 경찰을 적대시하는 심리현상을 말한다. 이 용어는 1973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은행에 침입한 4명의 무장강도가 은행 직원들을 볼모로 잡고 6일간 경찰과 대치한 사건에서 처음 관찰된 데서 유래한다.
탈취범 허 씨는 서울에서 택시를 탄 후 같은 30대인 택시기사와 수시간 동안 동승하면서 많은 얘기를 나눴을 것으로 짐작된다. 실제 택시기사의 휴대폰을 빌려 쓴 것도 확인됐다. 더욱이 택시기사는 어렵고 힘든 직업이며 사회에 대해 자신도 알지못하는 불만과 적개심이 쌓여있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어려운 처지에 있는 허씨를 아무런 대가없이 자신의 위험이 따르는데도 불구하고 도왔다면 허씨의 범죄 행위를 이해하고 동정하는 일종의 '스톡홀름 신드롬'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택시기사들은 대부분 어렵고 힘든 삶을 살고 있다. 당연히 어렵고 힘든 사람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지지를 나타낼 수 있는 반면, 그 반대에 서있는 사람들을 적대시할 수 있다. 택시기사들 중엔 혹시 자신도 모르게 '스톡홀름 신드롬'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