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결함과 교통사고간 인과관계를 인정한 첫 고등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에 따라 자동차 제조사는 피해자들에게 손해를 배상하라는 주문이 내려졌다. 지난 2002년 급발진 사고에 대해 차량 결함을 물은 1심 판결이 있었지만 상급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서울고법 민사1부(부장 유승정)는 15일 D사 직원 이모(30)·김모(29)씨와 이들의 가족 등 12명이 현대자동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패소한 1심을 깨고 “8천630여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현대차측은 “판결문을 받아본 뒤 대법원에 상고할지, 배상책임을 그대로 수용할지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판결문이 전달되려면 통상 2주쯤 시간이 걸린다.
이씨는 2001년 8월 현대차에서 생산한 승합차 그레이스를 몰고 경부고속도로에서 시속 약 90㎞로 주행하던 중 갑자기 차체가 흔들리고 왼쪽으로 쏠리면서 중앙분리대에 부딪치는 사고를 당했다. 승합차 뒷바퀴에 연결된 베어링에 이상이 생겨 녹아버리면서 차축과 붙어버렸고, 이로 인해 차축이 회전을 하지 못해 부러졌다. 이씨가 몰던 D사의 업무용 승합차는 불과 석달 전에 출고된 신차였다.
사고로 이씨는 전치 8주의 부상을, 같이 탔던 김씨는 피부와 신경이 손상되는 중상을 입은 뒤 현대자동차를 상대로 소송을 냈으나 1심 재판부는 “제조물 결함으로 볼 수 없다.”고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D사 대표와 직원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1심에서의 증거서류 제출로는 원고 입증이 약했다고 판단, 차량 베어링을 직접 만들어 제출하고 감정서를 작성한 두 명의 교수를 증인으로 불러 피고측 전문가들과 재판부 앞에서 토론도 할 수 있게 하는 등 사고 원인 입증에 최선을 다했다.
결국 항소심 재판부는 원고측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승합차 차축 이 부러진 것은 승합차가 중앙분리대와 부딪히기 이전으로 보인다. 승합차가 정상적으로 운행되고 있다가 발생한 사고이므로 베어링 구조ㆍ조립상태 등에 결함 없이는 발생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소비자 측면에서는 결함을 과학적·기술적으로 입증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 제조업체가 다른 원인으로 사고가 발생했다고 입증하지 못하고 있는 이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덧붙였다.
원고측 변호를 맡았던 이민석 변호사는 “베어링 결함과 같은 기술적인 부분은 소비자가 도저히 입증할 수 없기 때문에 법원이 입증 책임을 완화해준 판결”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