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취재본부 서철석 기자] 5년 전 쿠팡 대구물류센터에서 숨진 고 장덕준 씨 사건이 산재 은폐 의혹 속에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쿠팡 산재 피해 노동자 유가족 모임과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 쿠팡물류센터지회 등은 지난 15일 대구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쿠팡 유가족 물류센터 순회 투쟁 돌입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쿠팡 산재 피해 노동자 유가족 모임과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 쿠팡물류센터지회 등은 지난 15일 대구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쿠팡 유가족 물류센터 순회 투쟁 돌입 기자회견'을 열고, 자료 은폐·왜곡 의혹에 대한 신속한 수사와 결과 공개를 촉구했다.
쿠팡풀필먼트서비스(CFS) 대구물류센터에서 일하던 고 장덕준 씨(당시 27세)는 2020년 10월 12일 경북 칠곡 사업장에서 새벽까지 야간 근무를 마치고 귀가한 직후, 샤워 도중 쓰러져 숨을 거뒀다. 유족은 장시간 노동에 따른 과로사라며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를 신청했고, 이듬해 2월 산재로 공식 인정됐다.
문제는 그 다음 단계에서 불거졌다. 고용노동부 대구서부지청은 산재 인정 한 달 뒤인 같은 해 3월 사건을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고, 결국 내사 종결로 마무리됐다. 산업재해는 인정되면서도 형사 책임은 비켜간 셈이다. 유족 측은 노동 당국이 무혐의 결론에 이른 근거와 조사 절차에 대해 제대로 된 설명을 들은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유족은 국회의원실을 통해 장씨의 약 12주간 근무기록지, 근로계약서, 퇴직금 산정서 등 핵심 자료를 입수해 자체 검증 작업을 벌이고 있다.
장씨의 어머니 박미숙 씨는 "근무기록지에는 저녁 7시에 출근해 새벽 4시에 퇴근한 것으로 돼 있는데, 실제 근로감독 과정에서 확인된 출근 시간은 6시 10분~6시 30분, 즉 미리 근무를 시작하고 있었고 퇴근도 4시를 넘기는 경우가 많았다"며 "명백한 근로 시간 초과가 드러났다"고 말했다.
사망 원인을 둘러싼 양측의 입장도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사고 당시 쿠팡 측은 무리한 체중 감량이 사망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다.
박 씨는 이에 대해 "덕준이의 단백질 수치가 거의 영양실조 수준이었다. 조사서에도 '횡문근 융해증'이 명시되어 있는데, 이 병명은 보통 과로나 열사병 등으로 사망한 경우에 자주 나온다"고 반박했다. 이어 "무전기나 PDA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이들을 착용하고 중량물을 다루는 등 여러 위반사항이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증거 자료 자체에 손을 댄 정황도 의혹의 핵심으로 지목된다. 유족은 김범석 쿠팡아이앤씨 의장의 지시가 내려진 이후 장씨의 근무 영상이 물을 마시거나 화장실에 가는 등 사측에 유리한 장면 위주로 재편집됐으며, 수사기관 제출 과정에서도 일부 장면이 선별·누락됐다고 보고 있다.
사건이 5년 만에 재조명된 결정적 계기는 지난해 12월 공개된 내부 메시지다. 당시 쿠팡 대표이사를 맡고 있던 김 의장이 전직 임원과 주고받은 대화에는 "장씨가 열심히 일했다는 기록이 남지 않게 하라", "휴게시간을 부풀리라"는 취지의 지시가 담겨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계기로 서울경찰청은 올해 1월 특별수사팀(TF)을 꾸려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쿠팡을 둘러싼 개인정보 유출, 산재 은폐 등 고소·고발이 잇따르고 있는 만큼, 경찰은 관련 사안을 동시에 들여다보겠다는 방침이다.
유족과 노동계는 이달 27일까지 대구를 시작으로 광주, 인천 등 전국 쿠팡 물류센터를 차례로 돌며 산재 은폐 의혹 진상 규명, 사측의 공식 사과, 고용노동부의 노동감독 등을 요구할 예정이다.
박 씨는 "노동부에서는 조사를 했다고 하지만, 정작 없었다고만 하니 이해하기 어렵다"며 "김범석 의장이 산재사고를 은폐하려 한 정황이 언론 보도로 드러난 만큼, 그에 대한 진상 규명 책임은 고용노동부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는 사건이 수사 중인 사안이어서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해주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철석 기자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