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0일 개봉 예정인 영화 '건국전쟁2'의 지하철 광고가 코레일의 조건부 승인과 대구교통공사의 민원 논란에 휘말리면서 공공기관의 정치적 중립성과 광고 심의 제도의 허점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서울 지하철 시청역에 설치된 다큐 영화 건국전쟁2 광고. 철거 논란이 불거진 뒤 김덕영 감독이 페이스북에 공개한 사진.논란의 불씨는 8월 27일 코레일이 영화 광고 철거를 통보하면서 당겨졌다. 며칠 뒤 철거 결정을 철회했지만 "개봉 이후 민원이 발생하면 즉시 철거한다"는 조건은 그대로 남았다. 제작사는 계약 기간 30일이 사실상 보장되지 않는다며 반발했고, 감독도 "조건부 승인으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코레일은 "민원이 제기돼 재검토한 결과, 정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계약 기간을 존중해 광고를 한 달간 유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영화 건국전쟁2는 영화 홍보라는 점에서 상업광고에 속하지만 작품의 주제가 현대 정치 상황과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이 판단의 배경이 됐다. 제작사는 2024년 개봉한 1편 광고가 별다른 문제 없이 지하철에 게재됐다는 점을 들어, 이번 조치는 기준의 일관성을 잃은 결정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사태는 대구교통공사가 코레일에 직접 민원을 넣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확산됐다. 대구교통공사는 앞서 자체적으로 이 영화 광고 게재를 거부했는데, 다른 기관에서 동일 광고가 허용되자 문제를 제기했다는 해석이 뒤따랐다. 제작사는 "다른 기관의 판단에 간섭하는 행위"라며 당혹감을 드러냈다. 대구교통공사는 이에 대한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핵심 쟁점은 '민원 발생 시 즉시 철거' 조항의 모호성이다. 광고주는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을 지불하고 계약을 맺지만, 누군가 민원을 제기하면 하루 만에 광고가 내려갈 수 있다. 민원의 주체와 사유가 공개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광고주는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다. 전문가들은 이런 구조가 특정 세력이 조직적으로 민원을 제기해 광고를 차단하는 방식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유사한 논란이 처음은 아니다. 2018년 서울교통공사는 문재인 대통령 생일 축하 광고가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자 계약을 해지하고 광고를 철거했다. 이를 계기로 '의견광고' 전면 금지 원칙이 세워졌다. 의견광고란 개인이나 단체가 사회적 쟁점에 대한 입장을 담은 광고를 뜻한다. 그러나 이번처럼 상업광고에도 조건부 철거가 적용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이번 논란은 광고주와 문화계 전반에도 부담을 준다. 제작사는 "1천만 원을 들여 광고를 진행했는데, 민원만으로 계약이 무력화되는 것은 부당하다"고 호소했다. 문화계에서는 독립영화 홍보 환경이 위축되고 표현의 자유가 침해된다는 우려가 나온다. 공공기관이 광고주를 불안정하게 대우하면 창작 의지와 산업 경쟁력이 동시에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광고 심사 기준의 명확한 공개가 필요하다. 민원이 접수되면 즉시 철거가 아니라 재심의 절차를 거쳐야 하며, 광고주의 이의신청 제도와 조정 기구도 갖춰야 한다. 공공기관 간 교차 개입을 차단하는 장치 마련도 요구된다. 중립성 확보라는 명분이 계약 안정성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명확한 기준과 절차가 마련되지 않으면 비슷한 갈등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오승안 기자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