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납금제가 사라진 지 5년, 법인택시 기사 3만 명이 떠났다.
서울역 택시 승강장에 택시들이 들어오고 있다. (사진=교통일보)서울 시내에서 20년째 법인택시를 몰아온 박모씨(59)는 올 초 퇴직을 고민하다 결국 그만뒀다. 배달대행 플랫폼으로 옮긴 그는 "택시 탈 때는 하루 10시간 넘게 운전해도 어차피 월급은 정해져 있었다"며 "배달은 힘들지만 오전 세 시간 일하고 오후 쉬는 날도 있다. 내 시간이 생겼다"고 했다. 택시를 떠난 이유를 묻자 그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돈보다 구조 문제였다."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집계를 보면, 전국 법인택시 운전 종사자는 2019년 10만 2,320명에서 지난해 7만 435명으로 5년 만에 31.2% 줄었다. 같은 기간 차는 있는데 운전할 사람이 없어 세워둔 차량이 늘고, 가동률은 2020년 40.7%에서 30%대 중반으로 하락했다. 부산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부산시와 택시업계 집계에 따르면 부산 법인택시 기사는 2019년 1만 649명에서 지난해 5,609명으로 47% 급감했고, 가동률은 74%에서 46%로 쪼그라들었다. 같은 기간 부산 법인택시 95개 업체의 4년 누적 적자는 약 8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1월 1일은 이 변화의 기점이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으로 사납금제가 전면 폐지되고 전액관리제, 사실상의 월급제가 의무화됐다. 기사가 하루 번 수입 전액을 회사에 입금하고 고정급을 받는 구조다.
서울에서는 2021년 1월부터 주 40시간 이상 근무를 전제로 한 월급제가 추가 도입됐다. 제도 취지는 명확했다. 사납금을 채우려는 압박에서 기사를 해방시키고, 장시간 운행과 승차 거부 관행을 끊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 현장의 숫자는 그 취지와 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인천에서 12년째 법인택시를 운전 중인 김모씨(54)는 "사납금 때는 많이 뛰면 400만 원 넘게 가져간 달도 있었다"고 했다. 그는 "지금은 기본급이 150만 원대고, 기준금 넘긴 초과분에 성과급이 붙는다고 하는데 실제로 300만 원 넘기기도 빡빡하다"며 "열심히 일할 동기가 없어지니 동료들이 하나씩 나간다"고 말했다.
남아 있는 이유를 묻자 그는 "나이가 있으니까요. 60 가까워서 어디 가겠어요"라고 짧게 답했다. 서울시택시운송사업조합 집계에 따르면 서울 법인택시 기사 가운데 60세 이상 비율은 이미 66.5%에 달한다. 남은 인력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수치다.
문제는 플랫폼 시장의 지각변동이 인력 이탈에 기름을 끼얹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택시 호출 시장에서 카카오T는 월간 활성 이용자 기준 점유율이 사실상 독점에 가까운 수준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23년 카카오모빌리티가 자사 가맹택시인 카카오T 블루에 콜을 집중적으로 배정하는 방식으로 불공정 경쟁을 했다고 보고 271억여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했다.
콜을 차단당한 경쟁 가맹사 소속 기사들은 이 기간 월평균 101만 원가량의 수입을 잃은 것으로 검찰 조사에서 확인됐다. 이 사건은 플랫폼에 가입하지 않거나 비가맹 상태로 남으면 수입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비가맹 법인택시 소속으로 운행하다 지난해 개인택시로 전환한 이모씨(61)는 "카카오T 콜이 끊기면 배회 영업만으로는 버틸 수가 없다"고 했다. 그는 "가맹에 들면 회사가 수수료 부담을 지는데 회사 경영이 어려우니 결국 기사한테 전가된다. 가맹 안 하면 콜이 줄고. 어느 쪽이든 기사가 손해"라며 "그러다 보니 결국 개인택시나 배달로 빠지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법인택시 운수사 입장에서도 수수료 문제는 경영을 옥죈다. 카카오T 블루 가맹 계약은 운임의 20%를 수수료로 납부하는 구조였고, 데이터 제공과 광고 명목으로 일부를 환급받는 방식이었지만 실질 비용 부담이 상당하다는 비판이 업계에서 꾸준히 나왔다.
국내 사정과는 다른 방향에서 인력난에 맞선 나라가 있다. 일본은 한국과 같은 택시 기사 고령화·감소 문제를 안고 있지만, 대응 방식이 달랐다. 코로나19 이전인 2018년 29만 1천 명이던 일본 택시 운전사는 지난해 말 23만 2천 명으로 줄었다. 구인배율은 2024년 기준 3.38배로, 한 자리를 내놓아도 지원자가 세 명이 넘어야 채울 수 있을 만큼 공급이 달리는 상황이다.
일본 정부는 2024년 4월 택시가 부족한 지역과 시간대에 한해 라이드셰어 금지를 해제하는 규제 완화에 나섰다. 동시에 택시 회사들은 처우 개선을 통해 신규 기사를 직접 유치하는 방향을 택했다. 후쿠오카시 도에이 택시는 외국인 채용을 확대해 전체 기사 46명 가운데 약 25%를 다국적 인력으로 채웠고, 2종 면허 취득을 위한 학원비 30만 엔(약 270만 원)을 지원하고 있다.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제도 개혁과 처우 개선이라는 두 축으로 동시에 끌어당긴 셈이다.
한국은 아직 그 두 축 모두에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29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는 성과연동형 월급제, 리스제, 파트타임제 등 임금체계 다양화 방안을 테이블에 올렸다. 성과연동형 월급제는 기본급을 유지하되 일정 기준을 초과한 운송수입에 추가 보상을 얹는 방식이고, 리스제는 기사가 회사 차량과 영업 기반을 활용하면서 운행 시간과 수입 관리를 더 자율적으로 가져가는 구조다.
충청북도가 실시한 택시 기사 임금체계 선호도 조사에서 응답자의 43%가 사납금제를, 31%가 리스제를 선호했고 월급제를 택한 비율은 6%에 그쳤다는 결과는 현장 심리를 보여주는 단서다.
서울 여의도에서 만난 직장인 최모씨(38)는 "야근 끝나고 새벽 1시쯤 강남에서 택시를 잡으려 했는데 30분 넘게 기다렸다"고 했다. 그는 "플랫폼으로 부르면 할증에 호출료까지 붙어서 2만 원짜리 거리가 4만 원이 넘는 경우도 있다"며 "결국 편의점에서 시간 때우다 새벽 버스 탔다. 택시가 있어도 못 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기사가 줄고 가동률이 떨어진 결과는 고스란히 심야 시간대 이동권 공백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상택 서울시택시운송사업조합 플랫폼사업부장은 "월급제를 도입한 뒤에도 기사 유입이 기대만큼 늘지 않은 것은 보수 구조만의 문제가 아니라 근무 환경과 노동 강도, 시장 변화가 함께 작용한 결과"라며 "배달이나 대리운전 같은 다른 운전 직종으로 이동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사납금제 폐지 이후 5년의 기록은 임금 제도를 바꾼다고 인력난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임금체계 다양화 논의 자체는 필요하지만, 플랫폼 독점 구조가 배차 불평등을 낳고, 고령화가 신규 유입을 가로막고, 다른 운전 직군이 선택지를 넓히는 한 법인택시의 매력은 좀처럼 살아나기 어렵다. 제도 설계 앞에 놓인 과제는 하나가 아니다.
하성우 기자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