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시가 버스 준공영제에 투입된 세금이 실제로 시민 이동을 개선했는지 데이터로 직접 묻기 시작했다. 감정 공방으로 흘러온 준공영제 효과 논쟁이 수치 검증의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과천시 시내버스. (사진=과천시)
과천시는 8일 시청 상황실에서 '민간데이터를 활용한 빅데이터 분석 사업' 착수보고회를 열고 본격적인 분석 작업에 돌입했다. 통신사 기반 이동인구, 카드사 소비 특성 등 시가 자체적으로 모으기 어려운 민간 데이터를 행정에 접목해 실효성 있는 정책 판단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다.
전 직원 대상 민간 데이터 활용 교육과 전 부서 수요 조사·면담을 거쳐 버스 이용 현황, 지역 상권 실태, 건물 에너지 특성 등 세 가지 분석 과제를 추렸다.
이 분석이 시작되기까지 과천시가 안고 있던 문제를 먼저 짚어야 한다. 과천시는 인구 약 8만 명의 소규모 도시다. 지하철 4호선이 시내를 관통해 광역 이동은 편리하지만, 시내 버스는 원도심과 지식정보타운 등 신개발지를 잇는 핵심 이동 수단이다.
준공영제를 통해 비수익 노선 운행을 유지해왔지만 재정 투입 규모가 인구 대비 적지 않다는 문제의식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과천시는 2035년까지 인구가 14만 명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도시 규모가 커질수록 교통 수요 구조도 달라지는데, 기존 노선 체계가 변화한 수요를 제대로 반영하는지에 대한 검증이 절실했다.
분석 착수의 직접적 배경에는 지식정보타운 개발에 따른 수요 불균형 민원이 있다. 원도심과 신개발지 사이의 이동 불편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이어졌고, "버스에 세금을 쏟아붓는데 정작 불편하다"는 시민 체감과 행정의 인식 사이 간극이 데이터 검증의 출발점이 됐다.
버스 분석의 핵심은 시간대별 승하차·환승 정보와 정류장 혼잡도, 생활이동인구 데이터를 교차해 들여다보는 데 있다. 교통카드 데이터가 승객의 이동 수요를 시간·공간 단위로 보여준다면 통신사 이동인구 데이터는 주거·상권·업무지역 사이의 흐름을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두 자료가 맞물리면 원도심·지식정보타운 등 3개 권역의 노선 중복도, 평균 이용객 수, 수요 집중 시간대의 배차 간격을 동시에 짚어낼 수 있다. 분석 결과는 버스 노선 체계 재설계의 근거로 쓰일 예정이다.
이런 방식의 선행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는 2013년 심야버스 노선을 설계할 때 심야 유동인구 이동 데이터를 분석해 9개 노선을 도출했다. 전주시도 교통카드 빅데이터를 활용해 버스 공백 지역을 추출하고 노선을 조정한 경험을 갖고 있다. 다만 이 사례들은 신규 노선 설계에 데이터를 활용한 것이다.
과천시의 이번 분석은 이미 운영 중인 준공영제의 성과를 소급 검증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는 점에서 결이 다르다. 재정을 집행한 뒤 그 효과를 데이터로 따져보는 작업을 소규모 지자체가 직접 수행하는 것은 보기 드문 시도다.
분석 결과에 따라 노선 운영 방식과 재정 지원 구조를 둘러싼 후속 논의가 본격화할 수 있다. 특정 시간대 공급이 수요를 크게 웃도는 중복 구간이 확인된다면 감편이나 노선 통합 논의가 불가피하고, 반대로 교통 공백 지역이 드러나면 증편 또는 신설 논의가 뒤따를 수 있다.
김진유 경기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버스 준공영제는 공공성 확보라는 장점이 있지만 재정 투입 규모에 대한 객관적 평가는 충분히 이뤄지지 못했다"며 "교통카드와 이동인구 데이터 같은 실제 이용 정보를 기반으로 정책 성과를 분석하면 향후 노선 조정이나 재정 지원 구조 개선 논의에도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운수업계와 노조도 분석 결과를 예의주시할 것으로 보인다. 준공영제 지원 구조가 손질되면 운송업체 수익 구조는 물론 기사들의 고용 안정성과 운행 시간에도 파장이 미칠 수 있다. 수요가 낮다는 이유로 노선이 줄면 비수익 노선 유지라는 준공영제 본래 취지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서울시가 준공영제 20주년을 맞아 재정 혁신을 추진하고, 전국 각지에서 버스 파업과 재정 논쟁이 반복되는 시점에 과천시의 이번 시도가 주목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준공영제를 두고 공공성이냐 효율성이냐를 놓고 정치적 공방을 벌이는 대신, 실제 데이터로 무엇이 작동하고 무엇이 작동하지 않는지를 먼저 확인하겠다는 접근이다.
신계용 과천시장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자료에 기반한 정책으로 시민의 불편과 요구에 발 빠르게 대응하겠다"며 "이번 빅데이터 분석 사업을 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맞춤형 행정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기반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분석은 이제 막 시작됐다. 결과가 실제 노선 재편과 재정 구조 개선으로 이어지느냐가 이 실험의 진짜 가늠자다. 데이터가 정책 변화의 근거로 쓰이는 순간 준공영제를 둘러싼 논의는 감정의 영역에서 검증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전국 중소 지자체들이 과천시의 실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박래호 기자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