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가 오는 8월 광역자치단체 최초로 청소년 버스요금 전면 면제에 나선다. 어린이·노인·장애인에 이어 청소년까지 더해지면 도민 셋 중 하나가 버스를 공짜로 타는 시대가 열린다. 이동권 확대를 향한 발걸음이 빨라지는 한편, 이미 연간 1,000억원을 웃도는 준공영제 보조금 위에 무료화 예산이 겹겹이 쌓이면서 재정 지속 가능성을 둘러싼 논쟁도 커지고 있다.
제주 시내버스. (사진=연합뉴스)
제주시 연동의 한 버스 정류장. 오전 8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각, 교복 차림의 고등학교 2학년 강모양(17)이 버스 단말기에 카드를 댔다. 삑, 소리가 났지만 요금은 빠져나가지 않았다. "처음엔 어색했는데 이제는 당연하게 느껴져요. 학원 갈 때도, 친구 만날 때도 그냥 타면 되니까요. 예전엔 카드 잔액 신경 쓰느라 엄마한테 자꾸 충전해달라고 했는데, 그게 없어지니까 확실히 편해요." 올 8월 청소년 버스 무료화가 전면 시행되면 이 풍경이 제주 전역 정류장의 일상이 된다.
버스를 공짜로 타는 제주 도민이 셋 중 하나를 넘는다. 이미 어린이·노인·장애인·국가유공자에게 적용 중인 무료 이용 제도에 청소년 4만2,000여 명이 더해지면, 무료 대상은 약 25만 명, 전체 도민의 36%에 달한다.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처음 있는 일이다.
제주도는 9일 만 13~18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버스요금을 전면 면제하는 정책을 오는 8월부터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도교육청이 중·고교생 통학 무료화를 위해 80억원을, 제주도가 통학 외 이동과 학교 밖 청소년 지원을 위해 15억원을 각각 부담하는 구조다. 총 95억원이다. 이동권 확대라는 명분은 선명하다. 그러나 제주 버스 재정의 현실을 들여다보면 물음표가 따라온다.
제주 시내버스는 2017년 준공영제 도입 이후 해마다 막대한 공적 자금을 필요로 하는 구조다. 2021년 기준 등록 버스 874대에 지원된 보조금은 총 1,039억원으로, 버스 한 대당 하루 지원액이 약 32만6,000원에 달한다. 이 구조는 타 시도와 비교해도 이례적이다. 제주의 버스 이용객 1인당 재정지원금은 2020년 기준 2,018원으로, 타 시도 평균의 약 2배 수준이다. 도의회에서 '돈 먹는 하마'라는 비판이 반복적으로 나온 배경이다.
이 위에 무료화 예산이 쌓이고 있다. 어린이·노인·장애인 무료화를 위해 투입되는 예산은 이미 약 200억원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청소년 95억원이 더해지면 무료화 관련 예산만 약 295억원이 된다. 2023년 기준 제주 준공영 버스의 운송수익금이 457억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수익금의 65%에 달하는 금액을 무료화 보전에 써야 하는 구조가 굳어지는 셈이다.
서귀포에서 6년째 시내버스를 몰고 있는 오모씨(54)는 이 변화를 현장에서 체감한다. "무료 카드 쓰는 어르신들이 많이 늘었어요. 예전엔 현금 내던 분들이 이제는 카드만 들고 타시죠. 노선이 줄고 배차가 길어졌는데도 사람이 늘었다는 건, 그만큼 버스가 필요한 분들이 많다는 뜻 아니겠어요." 그는 잠시 멈추다 말을 이었다. "솔직히 공짜로 태울수록 버스 회사 살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기사들도 잘 몰라요. 위에서 해결해주겠지 하고 믿는 거죠."
제주도는 지난해 버스 75대를 감차하며 재정 절감을 시도했다. 이 감차로 인한 재정지원 절감 예상액은 연간 180억원으로, 10년간 2,109억원의 예산 절감 효과가 기대된다는 게 도의 설명이다. 표면상으로는 절감액 180억원이 청소년 무료화 비용 95억원을 웃도니 여유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 계산은 단순하지 않다. 감차 절감액은 운영 보조금 감소분이고, 무료화 비용은 요금 수입 감소분을 별도로 보전해야 하는 성격이다. 회계 항목이 다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준공영제 도입 이후 버스 수송 분담률은 2017년 14.2%에서 2019년 14.7%로 소폭 올랐다가 2020년 11.5%로 떨어졌고, 민선 8기 목표인 2023년 16.2% 달성도 어렵다는 전망이 나왔다. 1,000억원 이상의 재정을 쏟아붓고도 이용률이 목표에 미달한 구조 위에 무료화 확대가 이뤄지고 있다는 뜻이다.
무료화가 이 분담률을 끌어올릴 수 있을까. 충남의 경험은 하나의 단서를 제공한다. 충남도는 2022년 4월 전국 최초로 18세 이하 어린이·청소년 대상 시내버스 무료화를 도입했다. 이용 건수는 2022년 625만여건에서 2023년 1,070만여건, 2024년 1,138만여건으로 해마다 늘었다. 이용률 상승은 뚜렷하다.
그러나 충남도 내부에서도 사전 충전 후 사후 환급하는 복잡한 절차가 실제 이용의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왔다. 무료화 선언이 곧 이용 확대로 직결되지는 않는다는 교훈이다. 제주가 청소년 전용 교통복지카드 발급 방식을 택한 것은 이 경험과 맥이 닿아 있다. 그러나 충남은 15개 기초지자체가 비용을 분담하고, 제주는 광역 단위가 사실상 단독으로 감당하는 구조다.
제주시 노형동에 사는 학부모 박모씨(45)는 이번 정책에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아이가 학원을 세 군데 다니는데 매달 교통카드 충전해주는 게 은근히 신경 쓰였거든요. 무료가 되면 그 부분은 덜 수 있죠." 그러나 그는 곧 단서를 달았다. "근데 버스가 제때 오지 않으면 무료가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해요. 우리 동네는 배차가 너무 길어서 애들이 결국 제 차로 데려다달라고 하거든요." 이 말은 이번 정책이 건드리지 않은 지점을 정확히 짚는다. 요금 면제는 이용 비용을 낮추지만, 버스가 없거나 늦게 오는 문제는 해결하지 않는다.
지난해 11월 도의회에서는 더 급진적인 제안이 나오기도 했다. 한 도의원은 2023년 기준 운송수익금 457억원을 근거로 버스 이용 증가를 감안하면 500억원이면 전면 무료화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진명기 제주도 행정부시장은 전면 무료화 시 연간 500억원의 추가 재정 부담이 발생하며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청소년 무료화에 드는 95억원은 전면 무료화 비용의 약 19% 수준이다. 무료 범위가 단계적으로 확대될수록 그 거리는 빠르게 좁혀진다.
농어촌 소도시들의 실험도 참고가 된다. 경북 칠곡군이 2014년 전국 최초로 무료운임제를 시행한 이후 전국 각지의 기초지자체에서 버스 무료화 바람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 사례의 공통된 과제는 재정 지속 가능성이다. 농어촌 소도시는 이미 버스 운영 수입 대부분을 지자체가 보전하는 구조여서 추가 부담이 상대적으로 작다. 반면 제주처럼 준공영제 기반의 광역 버스망을 운영하면서 무료화를 확대하는 경우, 수익 구조에 미치는 파장은 훨씬 복잡하다.
정책의 실효성은 카드 발급률이라는 변수에도 달려 있다. 충남의 경험은 이 지점에서 경고를 보낸다. 충남도는 2022년 무료화 도입 이후에도 사전 충전 후 사후 환급하는 복잡한 절차 탓에 실제 혜택을 받은 청소년이 대상자의 절반을 웃돌지 못한 시기가 이어졌다. 제주도는 7월까지 청소년 전용 교통복지카드 발급을 완료한다는 계획이지만, 학교 밖 청소년이나 가정 형편상 발급 절차를 밟기 어려운 취약계층에게 실제 혜택이 닿을지는 검증되지 않았다.
제주시에서 검정고시를 준비 중인 김모군(17)은 그 불안을 직접 드러냈다. "학교 다니는 친구들은 선생님이 알아서 해줄 텐데, 저 같은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카드 발급하려면 어디 가야 하는지도 몰랐고, 물어볼 데도 마땅치 않아서요." 무료화의 혜택이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에게만 실질적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닌지, 정책 설계가 답해야 할 지점이다.
숫자를 정리하면 제주 버스 재정의 구조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연간 1,000억원 이상의 준공영제 보조금 위에, 기존 무료화 예산 200억원과 청소년 무료화 95억원이 얹힌다. 무료화 관련 예산 총액 295억원은 2023년 기준 운송수익금 457억원의 65%에 달한다. 무료 이용자가 늘수록 수익금 총액은 줄어들고, 그 구멍은 지방재정이 메워야 한다.
김진유 경기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대중교통 요금을 무료로 만드는 정책은 이동권 확대라는 긍정적 의미가 있지만, 재정 구조와 정책 목표가 함께 설계되지 않으면 단순한 요금 지원 정책에 머물 수 있다"며 "무료 정책이 실제 이용 증가로 이어지는지, 교통 체계 개선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지속적인 정책 평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는 8월, 제주 청소년은 버스에 공짜로 탄다. 이 정책이 교통복지의 진전으로 기억될지, 재정 부담의 서막으로 기록될지는 '무료'라는 선언 이후에 달려 있다. 도민 36%가 요금을 내지 않는 버스가 달리는 섬에서, 나머지 64%가 그 비용을 세금으로 감당할 수 있는가. 제주가 답해야 할 진짜 질문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하성우 기자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