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족들의 교통사고를 목격한 어린이가 이로 인해 정신질환 증세를 보일 때 이에 대해서도 피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는 사고를 직접 당한 피해자 외에 목격자에게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인정, 가해자의 배상책임을 인정한 취지의 첫 판결이어서 주목된다.
박진주(당시 8살. 여아)는 2000년 5월 15일 주택가 뒤 도로에서 갑자기 달려드는 승용차에 치이는 사고를 당한다. 함께 있던 언니 박선주(당시 9살.여아)는 바로 옆 동생의 사고를 봤다. 동생 박진주는 몸에 3군데의 골절상 등 중상을 입었으며, 언니 박선주는 이후 함구증, 수면장애, 대인관계 철수 등 정신질환증세를 보이며 정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런데 보험사는 이들 자매와 그들의 가족을 상대로 소송까지 냈다. 피해액을 모두 줬다며 더 이상 보험금 지급의무가 없다는 것을 확인해달라는 취지에서였다.
소송의 쟁점은 사고를 당한 자매들의 정신과 장애가 과연 교통사고에 따른 것인지 여부였다. 하급심판결은 엇갈렸다. 1심 법원은 피해자들 손을 들어줬다. 박진주는 물론 박선주의 정신적 장애도 모두 교통사고로 말미암은 것이란 이유다.
그러나 이와 달리 2심 법원은 피해자인 박진주에 대한 책임은 인정하면서도 목격자인 박선주에 대한 책임은 부정했다. ‘교통사고가 대형사고가 아니고 직접 사고를 당한 게 아니라 사고를 목격한 것에 불과하다’는 게 그 이유다.
하지만 대법원은 2심 법원 판단을 뒤집고 사건을 원심인 대구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그 때 사고 상황이 결코 가볍다고 볼 수 없고 만 9세에 불과한 아동이 사고목격으로 상당한 정도의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것임은 경험법칙에 비춰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전제한 뒤 “직접 외상을 입지 않았더라도 가족의 생명을 위협하는 사건을 봄으로써 받은 고통과 정신적 충격이 ‘외상적 사고’로 작용해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 발병원인이 될 수 있음은 의학적으로 인정” 된다고 판단했다.
결국 직접 외상을 입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를 예상할 수 있는 사고가 아니라고 단정한 2심의 판단에 잘못이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지금까지 교통사고 목격자는 수사에서 참고인이나 소송에서 ‘증인’에 불과했다. 그런데 교통사고 목격자의 손해를 인정한 위 대법원 판결로 손해배상소송 당사자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목격한 사고는 ‘교통사고’에만 국한되지 않고 대구지하철화재사건처럼 대형 참사도 해당될 것이다.
또 피해자와의 관계도 ‘가족’에만 한정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목격자의 정신장애가 사고목격에 따른 정신적 충격으로 말미암은 것이란 점은 증거로 입증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