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개별화물자동차연합회 배국철 전무가 지난달 16일 갑작스럽게 사퇴했다.
표면적인 사퇴 이유는 일신상 사유이지만 실제로는 교통전문 주간지인 교통환경신문의 기사 내용에 대해 불만을 갖고 소송을 제기했다가 기각 당하자 이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 것이다.
교통환경신문은 지난 3월20일자에 '배 전무의 불손한 언사가 도마 위에 올랐다'는 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는 교통전문 기자 중 가장 오랫동안 화물운송업계를 담당하고 업계소식에 정통한 것으로 평가받는 김호재 기자가 작성한 것이다.
기사내용에 따르면 배 전무는 올 2월 하순경 연합회 직원들과 식사자리에서 모 협회 이사장을 거론하면서 노골적인 욕설을 하고 이날 식사를 함께 한 도성주 전 연합회장에게 "내게 도전하는 것이냐!"는 등 불손한 언행을 했다는 것.
이로 인해 3월16일 개최된 연합회 정기총회에서 배 전무에 대한 불신임문제가 제기돼 연합회 차기 이사회에서 전무 불신임 건을 정식 안건으로 채택, 다루기로 했다고 신문은 보도했다.
이 기사가 나간 후 배 전무는 "언쟁을 한 일은 있지만 품위를 망각할 정도의 언행을 한 사실이 없다"고 해명하고 기사로 인해 명예가 훼손됐으며 직장에서도 탄핵될 위험에 처했다고 주장,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보도 및 손해배상청구를 구하는 조정신청을 제기했다.
언론중재위원회는 배 전무의 주장을 담은 반론보도문을 게재할 것을 결정했다. 배 전무의 입장은 충분히 살려주되 정정보도 및 손해배상청구는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그러자 배 전무는 이의를 제기하고 법원에 정정보도문 게재 및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지난달 8일 기각 당하자 전격 사퇴하고 만 것이다.
사건을 맡은 서울서부지법 제21민사부(재판장 신성기 판사)는 판결문에서 "기자가 이 사건 기사의 내용을 취재하게 된 경위를 살펴볼 때 신청인(배국철)이 도 회장과 저녁식사 및 술자리를 함께 하면서 도 회장에게 불손한 발언을 하고 모 협회 이사장을 직접 거론하면서 노골적인 욕설을 한 사실이 인정되므로 그러한 사실이 없음을 전제로 한 신청인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배 전무는 책임을 면하려고 거짓말한 셈이 됐다.
▶침소붕대(寢所繃帶)한 이유는?
어떻게 보면 이번 배 전무의 술좌석에서의 불손한 언행 사건은 단순한 해프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배 전무가 술김에 실수한 말이라고 도 회장에게 사과했다면 술 취한 사람에게 관대한 우리 사회의 관습상 어쩌면 유아무유(有耶無耶)로 끝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웬일인지 배 전무는 도 회장에게 "해 볼 테면 해보자"는 식으로 전의(戰意)를 다졌고, 도 회장은 이를 일부 시·도 협회 이사장에게 알려 불신임문제가 제기됐다. 이 같은 상황은 언론에 포착돼 기사화되기에 이르렀다.
많은 사람들은 이번 사건의 본질을 개별화물연합회의 내분으로 보고 있다. 저녁식사 자리에서 연합회 바로 전임 회장인 김기태 서울협회 이사장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김기태 서울협회 이사장은 1년반 전에 현 안철진 연합회장과 회장직을 놓고 경합을 벌였다가 떨어졌다. 이른바 야권의 주도 인물이다.
현 안철진 회장은 김기태 서울 이사장에게 타격을 주기 위해 김 이사장이 회장 임기중 공금과 관련된 사항을 측근들과 의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과정에서 개별화물연합회의 창립자인 도 회장이 "업계의 화합을 해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며 협조하지 않자 섭섭함을 감추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실제로 안 회장은 이번 교통환경신문의 보도 사건을 자신 對 도성주 전 회장 또는 김기태 서울 이사장의 대결구도로 생각하고 꼭 이들을 꺾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해프닝으로 끝날 수도 있었을 사안이 법정으로 가게 되고 배 전무의 사퇴라는 부산물을 낳게 됐다.
이런 면에서 안 회장의 책임 또한 크다고 할 것이다.
▶실망스러운 안 회장의 언론관
실제로 안 회장은 싸움을 말리기는커녕 싸움을 붙인 정황이 포착된다. 안 회장은 지난 6월19일 가진 연합회 의장단 회의에서 신문보도와 관련, "배 전무에게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를 해서 신문기사 내용의 진실여부를 밝혀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전무가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또 "배 전무가 거취표명을 하려고 하자 전무 개인의 일일 수 있지만 이건 업계의 문제이니 용납을 못한다고 해서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해 오늘에 이르게 됐다"고 설명했다. 안 회장이 오히려 전무를 대리인으로 내세워 도성주 전 회장과 김기태 서울 이사장, 그리고 기사를 쓴 신문과 한 판 대결을 벌이고 패전(敗戰)한 셈이 된 것이다.
만약 안 회장이 업계의 화합과 단결을 생각했다면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배 전무에게 전무로써 언행에 조심하라고 각별한 주의를 주고, 배전무가 술김에 실수했다고 도 회장 등에게 이해를 구했을 것이며, 언론중재위원회의 반론보도문을 받아들이는 선에서 마무리했을 것이다.
하지만 안 회장은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배 전무의 전의를 부추기고, 야권세력이 거짓말로 자기를 모함하고 있다고 공격했으며, 정확한 사실을 보도한 신문에 대해서도 뻔뻔스럽게 법원에 정정보도문 게재 및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도록 했다.
배 전무가 안 회장의 승낙 없이 혼자 자의적으로 이번 사건을 확대했다고 보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하지만 안 회장은 소송이 기각 당하자 배 전무에게 책임을 묻어 사퇴시킨 형식으로 문제를 덮으려고 하고 있다.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안 회장은 교통전문 언론에 대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회장으로써 자질을 의심케 하고 있다. 안 회장은 의장단 회의에서 "이런 일이 생겨 이참에 전문지를 선별해서 연합회 출입기자를 정해두고 나머지 기자들은 와도 일절 접대를 하지 않았다.", "촌지 안준다고 해서 제가 목숨을 걸고라도 이런 전문지들은 정리를 해야겠다. 이런 더러운 것들은 끝까지 문제를 삼아서 고쳐야 겠다"는 등 막말을 일삼았다.
도대체 개별화물연합회장이라는 자리가 얼마나 대단하기에 제 맘대로 언론을 선별하고 정리한다는 것인가? 기자들은 취재 필요에 의해 관공서나 단체를 출입한다. 개별연합회도 취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면 구태여 다닐 필요가 없는 것이다. 회장이 제 맘대로 출입기자를 정한다는 것은 아전인수(我田引水)이며 오만방자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일부 언론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이 일어났다고 해서 세상의 모든 아들들을 패륜아로 볼 수 있을 것인가?
안 회장은 더러운 것들, 촌지 운운했는데 더러운 것들은 누구이며 어떤 근거로 이렇게 말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안 회장이 원하는 대로 기사를 써주는 신문사가 더러운 것들인가, 아니면 안 회장 스스로가 비판당했다고 생각하는 기사를 쓰는 신문사가 더러운 것들인가?
안 회장은 왜 이런 상황이 됐는지 겸손하게 자신을 먼저 돌아보는 게 옳은 태도다.
안 회장은 이번 사태에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