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민식이법’, 무엇에 그렇게 쫓겼나…아쉬움과 씁쓰레함
  • 박래호 기자
  • 등록 2019-12-15 13:35:11

기사수정
  • 법안 필요성 의문...국회, 심의과정서 치밀한 논의도 못해



스쿨존에서 어른들의 부주의로 일어나는 사고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일명 ‘민식이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뒤 가중처벌 논란이 나오며 다수 운전자들이 반발하고 있다. 국회 법안 심의과정서 조금 더 치밀하고 충실했다면 하는 아쉬움과 씁쓰레함이 남는다.


‘민식이법’은 지난 9월 충남 아산의 한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차량에 치여 사망한 김민식(당시 9세)군의 사고 이후 발의된 법안으로 ‘도로교통법 개정안’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 개정안’ 등 2건이다.


도로교통법 개정안은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내 과속단속 카메라 설치를 의무화하고, 해당 지방자치단체장이 신호등, 과속방지턱, 속도제한·안전표지 등을 우선 설치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특가법 개정안은 스쿨존 내 사망사고 가해자를 가중처벌하는 것이 골자다. 어린이 치사 사고 가해자는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을, 치상 사고 가해자는 1년 이상 15년 이하 징역이나 5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 벌금 처벌을 받는다.


민식이법이 국회 문턱을 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민식이 부모가 국회를 수차례 방문해 눈물로 호소하고, 문재인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에서 민식이 부모가 첫번째 질문자로 나서며 다수의 국민들이 법안 취지에 공감을 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국회 입법이 급물살을 탔다.


법안은 여·야를 막론한 찬성표를 받아 20대 정기국회 마지막 날인 지난 10일 본회의를 통과했다. 하지만 그 뒤 ‘운전자 처벌이 너무 지나치다’는 네티즌들의 글이 잇따르고, 청와대 국민게시판에 ‘민식이법 개정’ 청원글이 올라오는 등 논란이 되고 있다. 법안의 국회 통과 뒤에도 뒷맛이 개운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스쿨존 내 과속 단속 카메라와 신호등, 과속방지턱, 속도제한·안전표지 등을 설치하는데 꼭 입법까지 필요했는지 의문이다. 이런 사항들은 도로교통법을 개정하지 않더라도 지방자치단체장의 예산 집행만으로도 실천할 수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일찌감치 적극적으로 나섰다면 애초 민식이와 같은 피해는 없을 것이라는 안타까움이 남는다.


스쿨존 내 사망사고 가해자를 가중처벌하는 것이 골자인 특가법 개정안도 민식이법이 아니더라도 가해자와 피해자 과실 정도에 따라 기존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으로 충분히 무겁게 처벌할 수 있다. 도로교통법과 마찬가지로 꼭 입법까지 필요했는지 의문이다. 있는 법을 잘 활용하면 될텐데 또 다른 법을 만들어야 생색이 나는 것일까?


특가법 개정안이 형평성과 부작용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일반적인 교통사고 가해자는 ‘고의범’이 아닌 ‘과실범’으로 분류된다. 과실범인 교통사고 운전자를 살인이나 음주운전과 같이 ‘고의’ 행위가 포함된 범죄에 준하게 처벌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이다.


시속 30km라는 제한속도를 지켜도 사고가 나 어린이가 숨지면 ‘안전 의무 소홀’을 이유로 무기징역 또는 3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게 되는데 다른 법과 비교했을 때 형평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살인의 형량도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다. 형벌 비례성의 원칙·과잉금지의 원칙에 어긋나 위헌법률심판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개정 법안은 국회를 통과한 만큼 정부공포를 거쳐 내년 초 시행될 전망이다. 하지만 전국 1만6000여 스쿨 존의 형태가 제각각이고 잘 알기도 쉽지 않은 곳도 있어 운전자가 자신도 모르게 법을 어기는 경우도 많을 것으로 보여 법 시행 후 더욱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특히 명확한 기준 없이 가중 처벌 하는 조항은 국민 누구나가 범법자 대상이 된다는 측면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과실 정도를 따져 피해자의 과실이 큰 경우엔 사망 사고라도 집행유예나 벌금형 등 여러 가지 선택의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민식이법을 둘러싼 논란은 입법 과정에서 법안 취지의 곡해 가능성을 막을 수 있는 치밀한 논의가 부족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당연한 결과다. ‘처벌’보다 ‘예방’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한 탓도 있다.


그동안 여야는 도로교통법, 특가법, 주차장법 등 어린이 교통안전을 위한 개정 법안들을 놓고 종합적인 대책을 논의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가중처벌 논란을 빚고 있는 특가법 개정안은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채 몇 분도 심의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의원들의 고민은 없었으며, 상당수 의원들은 법안 내용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투표를 했다.


법무부와 법원도 마찬가지였다. 국회에 제출한 의견서엔 ‘국회가 입법 재량에 따라 민식이법을 입법할 수 있다’는 원론적 답변만 담았다.


사실 민식이법은 처음부터 눈길을 끈 것은 아니었다. 법안이 발의됐던 10월은 ‘조국 이슈’가 국회의 블랙홀이었다. 그러다 11월 문재인 대통령이 “운전자들이 어린이보호구역을 쉽게 인식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 실행하라”고 정부에 지시하고 국민과의 대화에서 여론이 쏠리면서 국회 입법이 급물살을 탔다.


국회가 민식이법을 심도 있게 논의하지 않던 상황에서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상황이 급변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관심사항이라 국회가 서둘러서 한 측면이 있는데 그렇다면 대통령이 관심을 가지면 하고, 관심을 안 가지면 안 할 것인가?


이처럼 성급하고 서둘러서 놓친 아쉬운 점들이 많다. 그래서 민식이법과 ‘하준이법’(주차장법 개정안) 등 어린이 교통안전 법안들을 모두 함께 모아 총체적인 토론과 논의를 통해 각 법안들을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회가 법안 심의과정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치밀하게 논의했다면 개정안 통과 후에 논란이 남는 게 아니라 더 큰 개선이 있었을 것이다.




프로필이미지

박래호 기자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0
좋아요
0
감동이에요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교통일보 유튜브2
가장 많이 본 기사더보기
  1. [이슈] 인구 70만 바라보는 김포, 골드라인은 한숨 돌렸지만… 5호선 연장 숙제 남아 배차를 줄여 버텨온 김포골드라인은 그 방식마저 한계에 다가섰다. 대안인 5호선 연장은 낮은 경제성과 먼 개통 시점이라는 과제를 안고 있다.두 칸짜리 열차가 장기역 승강장에 들어선 건 28일 오전 7시20분이었다. 사우역을 지나자 객실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종점 한 정거장 전인 고촌역에서는 문이 열려도 오르지 못한 승객이 있었다. 그...
  2. [현장]한강버스 요금 2배 된다…관광이냐 교통이냐, 주말 요금 두고 공방 서울시가 내년 4월부터 한강버스 주말·공휴일 요금을 3천 원에서 6천 원으로 올린다. 평일 기본요금 3천 원은 그대로 둔다.시는 29일 오전 10시 서울시청 서소문청사 후생동 4층에서 '한강버스 요금체계 개편을 위한 시민 공청회'를 열고 차등요금제 세부안을 공개했다. 서울시의회 환경수자원위원회 의원과 전문가, 운영사 관계자, ...
  3. 주말엔 더 내고 평일은 3천 원 그대로…한강버스 '차등요금' 꺼냈다 주말마다 한강버스에 여가 이용객이 몰려 대기 불편이 커지자, 서울시가 기본요금 3천 원은 그대로 두고 주말·예약 요금을 따로 매기는 차등요금제를 추진한다.서울시는 29일 오전 10시 서소문청사 후생동 4층에서 '한강버스 요금체계 개편을 위한 공청회'를 연다고 밝혔다. 공청회에서는 차등요금제의 도입 목적과 필요성, 주말&mi...
  4. [이슈] 서울역~킨텍스 17분…GTX-A 달리는데, 다른 노선 2031년에야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A노선이 개통 2년 반 만에 누적 이용객 4047만 명을 넘어서며 경기도민의 출퇴근 시간을 줄이고 있다. 하지만 B·C노선은 착공식 이후에도 실제 공사가 늦어지면서 2031년에야 개통할 예정이다.  지난달 28일 서울역 지하 GTX-A 승강장에서 열차에 올랐다. 연신내역과 대곡역을 지난 열차는 경기 고양 킨텍스역에 멈춰 .
  5. 로보택시 회사들 데이터 공유한다…외산 라이다 대신 국산 부품 우선 검토 미래차 부품기업들이 기술을 확보하고도 양산 경험과 수요처가 없어 상용화 문턱을 넘지 못하자, 정부가 완성차·부품·반도체·로보택시 기업을 짝지은 협력 협약 5건을 맺었다.산업통상부(산업부)는 30일 서울 현대모비스 본사에서 '미래차 생태계 구축 협력' 업무협약식과 기업 간담회를 열었다. 'M.AX 얼라이언스' ...
  6. [이슈]한강버스 적자는 서울시민 세금으로, 주말 요금은 서울시민도 2배 서울시 요금안대로라면 내년 4월부터 주말에 한강버스를 타는 서울시민은 6천 원을 낸다. 외국인 관광객, 다른 지역 주민과 같은 요금이다. 한강버스 운항 적자는 서울시 재정으로 메운다.서울시는 지난달 29일 '한강버스 요금체계 개편(안)을 위한 시민 공청회'에서 주말·공휴일 요금을 두 배로 올리는 차등요금제를 공개했다. 이 ...
  7. 美는 수입 금지하는데…韓, 中 로보택시 안보 규제 '미도입' 중국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를 단 차량 10대가 이미 서울 강남을 달리고 있지만, 국내 운행 사례가 없다는 이유로 중국산 로보택시가 어떤 데이터를 수집하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엄태영 국민의힘 의원(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은 국토교통부(국토부)에서 받은 '중국산 로보택시 국내 도입 및 규제 현황' 자료를 28일 ...
  8. 서울시 "2030년까지 자율주행 시내버스 500대 도입 추진" 기존 버스에 센서를 덧붙이는 소규모 실증으로는 대량 도입에 한계가 있자, 서울시가 현대차·버스업계와 손잡고 자율주행 전용 시내버스 500대 도입을 추진한다.서울시는 1일 시청에서 현대자동차, 서울특별시버스운송사업조합(버스조합)과 '레벨4 자율주행 시내버스 상용화 및 산업 생태계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고 밝.
  9. 현대캐피탈 대출금 상환 유예…렌터카 업계 경영난 완화 기대 부산지역 중소 렌터카업체들이 캐피탈 사를 이용해 렌터카 차량을 할부로 구매할 시 매월 정기적으로 내는 대출금 상환을 일정 기간 유예하고 유예 기간 발생하는 경과이자도 감면받을 수 있게 된다.대출금 상환 유예와 경과이자를 감면받으면 고물가·고금리·고유가 여파로 인한 소비 심리 위축으로 렌터카 가동률이 바닥 수준...
  10. 오세훈 "버스도 필수공익사업장 지정해야"…교통공사 정원 감축은 '시민 요구' 오세훈 서울시장이 7일 시내버스도 지하철처럼 필수공익사업장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서울시 입장을 재확인했다.오 시장은 이 날 오전 10시 서울시청 3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민선 9기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교통 현안을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서울교통공사 노조와의 정원 협상이 쟁의 절차로 이어지는 상황과 시내버스 통상임금 판...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