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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만 원 벌금 논란, 그 본질을 묻다... ‘민식이법’ 5년, 스쿨존 정책의 딜레마 징벌적 벌금 체계가 과연 답일까? 해외는 '설계'로 답을 찾는다 사고율 제자리걸음, 스쿨존 정책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시점 하목형 기자 2025-08-08 16:02:47

어린이 보호구역(스쿨존) 내 속도위반으로 부과되는 ‘13만 원 벌금’이 운전자들 사이에서 거센 논란의 중심에 섰다. 


스쿨존 단속 (연합뉴스) 

지난 7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온 게시글은 “예방 효과 없는 과도한 형벌”이라는 주장을 제기하며, 단순 불만을 넘어 스쿨존 정책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촉발시켰다. 이 논쟁은 한국의 스쿨존 정책이 징벌적 수단에만 치우쳐 있다는 비판으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한 SNS에 '13만 원 벌금,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과연 옳은가'라는 내용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해당 게시글의 작성자는 "벌금이 5만 원이어도 운전자는 충분히 조심한다"고 주장하며, 현행 벌금 체계가 예방 효과에 비해 지나치게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스쿨존 내 속도위반 시 일반 도로의 2배인 9만 원에서 최대 15만 원의 벌금이 부과되지만, 2022년 기준 208만 건 이상의 단속에도 불구하고 사고 감소율은 미미한 수준에 그쳐 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해외 선진국들은 징벌적 벌금만으로 스쿨존 안전을 확보하지 않는다. 호주가 최대 359만 원의 고액 벌금을 부과하는 한편 물리적 안전시설을 병행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일본과 스웨덴은 벌금보다는 차량 진입 자체를 차단하거나 저속 운행을 유도하는 도로 설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운전자의 자율적 규제에 의존하기보다, 물리적 환경을 통해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는 근본적인 접근법이다.


미국 뉴욕시는 24시간 인공지능(AI) 카메라 단속을 통해 위반 건수를 89% 줄였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뉴욕시는 '노 스탠딩 구간'과 같은 도로 재설계 정책을 동시에 시행했다. 


벌금은 50달러(약 6.6만 원)로 한국보다 낮지만, 위반 시 보험료 가중 등 간접적 제재를 강화하여 운전자의 책임감을 높였다. 싱가포르 역시 중앙섬이나 병목 구간을 만들어 차량의 자연적인 감속을 유도했고, 그 결과 스쿨존 사망자 '0명'을 달성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해외에서는 스쿨존 단속 방식에서도 다양한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다. 캐나다 미시소거시는 초기 24시간 단속을 도입했으나 운전자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이후 등하교 시간대로 단속 시간을 전환하며 '아이 보호'라는 정책의 목적을 명확히 했다. 


독일은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활용한 카메라로 시간대별 단속을 자동 조정하고, 도로 폭을 좁혀 차량 진입 자체를 억제하는 정책을 병행하고 있다. OECD는 스쿨존 정책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시속 30km 이하 제한과 함께 안전 설계를 병행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한국의 스쿨존 정책은 2020년 '민식이법' 시행 이후 벌금 가중 조치에 집중해왔다. 그러나 2021년 이후에도 스쿨존 사고 건수는 매년 500건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벌금 강화만으로는 사고 감소에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스쿨존 지정률이 84.7%에 달하지만, 정작 어린이집이나 학원 주변의 안전 관리는 미비하다는 점도 문제다. 물리적 인프라도 부족하다. 보차 분리 도로 중 45.8%는 법적 기준 보도폭을 충족하지 못하고, 중앙분리대 없는 구간의 사고율은 96.2%에 달해 사고 위험을 높이고 있다.


벌금 논쟁을 넘어선 종합적인 접근이 시급하다. 실사고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신호기가 없는 구간의 사고율이 62.5%로 높게 나타났다. 이는 핫스팟에 대한 집중적인 인프라 투자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대구시가 시범 운영한 시간제 단속은 심야 시간대 준수율을 113% 상승시키는 성과를 보였지만, 등하교 시간대 준수율 감소라는 새로운 문제도 드러냈다. 


일본의 자원봉사자 안전 활동이나 호주의 횡단보도 감독관 모델처럼 시민 참여를 유도하는 시스템 도입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실사고 분석 보고서는 "스쿨존은 어린이 눈높이에서 설계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SNS에 올라온 문제 제기는 단순한 벌금에 대한 불만을 넘어, 스쿨존 정책의 목적과 수단 간의 불일치를 지적한다. 단순히 운전자를 위협하는 징벌적 정책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 


이제는 벌금 인상 논의를 멈추고 '어린이 보호 인프라' 확충에 예산을 집중해야 할 때다. 도로 설계, 첨단 기술, 그리고 제도를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 진정한 안전을 이뤄내야 한다. 


"운전자를 위협하기 전에, 왜 신호위반이 발생하는지 분석하라"는 메시지는 한국의 스쿨존 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데이터 기반의 스마트 스쿨존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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