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일흔에 떠난 자동차 세계 여행…"우리를 돌아보는 시간"
  • 교통일보
  • 등록 2023-11-06 10:40:01

기사수정
  • 홍기·신명희씨 부부, 러시아 거쳐 유럽 본토 도달
  • "더 나이 들면 못 할 것 같아 과욕 부려…건강히 잘 끝나길"

"젊은이들도 힘들 텐데 시베리아를 건너 유럽까지 어떻게 가려고 그러냐, 과욕을 좀 버리라고들 했죠. 그래도 더 나이 들면 이런 여행을 생각할 수 없을 것 같아 과욕을 부렸어요."


홍기씨가 차 안에서 내부 집기를 하나씩 소개해주고 있다. (파리=연합뉴스) 송진원 특파원

올해로 일흔이 된 홍기씨와 부인 신명희(65)씨가 오랜 계획 끝에 지난 8월 말 자동차 세계 여행을 떠나게 된 이유다.


3년 전 은퇴한 홍씨 부부는 8월 23일 동해항에서 페리에 스타렉스 차 한 대를 싣고 러시아 극동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났다.


세계 여행하기, 오래전부터 두 부부가 계획한 일이었다.


"한국의 은퇴자들이 할 일이 없어요. 갈 곳이 없어요. 힘 있는 기관에 있다가 퇴직한 사람들은 은퇴 후에도 여기저기서 모셔가지만, 대부분의 은퇴자는 공원에 가잖아요. 그렇게 노년을 보내기가 싫었어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그럼 세계 여행을 가자고 했죠."(홍씨)


세계 여행을 하려면 돈이 어마어마하게 드니, 두 부부가 생각해 낸 건 자동차 여행이다. 중고 스타렉스 한 대(까망이)를 사서 내부를 캠핑카로 꾸몄다. 차 안에서 모든 생활이 가능하도록 간이침대, 개수대, 소형 인덕션, 냉장고, 오수통 등 필수 장비들을 알차게 채워 넣었다. 한국서 드는 월 생활비 200만원가량으로 한 달을 보내는 게 목표였다.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한 건 8월 29일이다. 러시아에서 차량 통관 절차가 꽤 걸렸다.


그때부터 홍씨는 약 1만㎞에 달하는 시베리아를 횡단하기 위해 하루에 짧게는 300㎞, 길게는 500㎞씩 운전을 했다. 고령에 쉽지 않은 장거리 운전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시베리아는 동네와 동네 사이가 너무 멀어요. 잠을 자려면 그래도 동네에 들어가는 게 나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500㎞씩 뛰었죠."(홍씨)


지인들이 "러시아 전쟁 통에 어딜 가려고 그러느냐"고 걱정했지만, 막상 모스크바에 들어서니 전쟁 중이라는 걸 느낄 수 없이 너무 평온했다고 한다.


한 달을 러시아에서 보낸 부부는 발트해의 에스토니아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유럽 여행에 들어갔다.


유럽연합(EU) 국가들을 돌며 생각지 못한 복병을 만났다.


우선 어마어마한 기름값이다. 유럽 물가가 이렇게 비싼지 몰랐다고 한다.


홍씨는 "러시아는 경유 1리터에 우리 돈으로 한 800원이어서 가득 넣어도 5만원 정도였는데, 유럽은 1리터가 2유로 가까이 되니 가득 채울 경우 16만, 17만원이 나온다. 물가가 장난이 아니다"라고 놀랐다.


홍기씨 부부가 지난 8월 말부터 타고 다니는 '캠핑카' 까망이. (파리=연합뉴스) 송진원 특파원

물을 구하는 것도 일이었다.


러시아에서는 마을마다 공용 수도가 있어 물통에 물을 쉽게 채웠는데, 스위스나 프랑스 같은 유럽 내 일부 국가에선 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가장 저렴하게 물건을 파는 마트를 찾아가 생수를 싸게 사서 쟁여놓은 뒤 최대한 물을 아껴 쓰기로 했다.


"지혜가 생기죠. 물을 아주 적게 쓰는 설거지 방법을 터득했어요. 종이 타월로 식기를 한 번 닦은 뒤 물로 가볍게 헹궈서 행주로 닦는 거죠. 세제는 전혀 안 써요. 기름진 음식을 먹지 않으니 가능한 일이에요."(신씨)


부부는 나라마다 있는 한인 마트에서 고추장, 된장, 배추 등을 사 직접 차 안에서 김치까지 만든다고 했다.


생각지 못한 날씨 탓에 여행 경로를 수정하는 일도 있었다.


핀란드를 시작으로 스칸디나비아 3국을 차례로 훑고 유럽 본토로 다시 들어오려 했으나, 북극권이 지나는 산타클로스 마을에 갔다가 눈이 너무 많이 오고 길이 얼어붙는 바람에 그대로 핸들을 남쪽으로 틀었다. 스칸디나비아 3국은 날이 따뜻해지는 내년 5월 하순에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


일정이 틀어지면서 부부는 예정보다 이른 4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 들어왔다.


부부는 유럽 인근 국가들을 여행하다 솅겐 조약에 따른 무비자 체류 기간(90일)의 종료 시점에 맞춰 지중해 건너 아프리카 땅 모로코로 넘어갈 예정이다. 그곳에서 석 달가량 머물며 차량 정비 등을 마친 뒤 다시 유럽 본토로 돌아온다는 계획이다.


지난 8월말부터 자동차로 러시아를 거쳐 유럽땅을 여행중인 홍기(70)씨. 4일 프랑스 파리에 도착했다. (파리=연합뉴스) 송진원 특파원

부부가 이번 여행을 통해 얻은 건 뭘까.


"서로 위로해주는 마음이죠. 그동안은 자녀 키우랴 공부시키랴 우리를 돌아볼 수 없었는데, 이런 여행을 통해 그런 시간을 많이 갖게 됐어요. 남편도 '참 멋있는 사람이구나'라는 마음이 생깁니다. 한국에서는 '원수'라고 그랬는데 하하하…"(신씨)


운전대를 책임진 남편 홍씨는 부디 남은 여행 기간 누구든 아프지 않길 바란다.


"60대에서 70대가 되면 건강 상태가 아주 안 좋아져요. 다리 힘도 더 떨어지고 판단력도 흐려지고. 매사에 두려움도 막 생기죠. 그래서 더 늦기 전에 나온 여행인데, 가끔 불안함이 생겨요. 내가 운전을 못 하게 되면 어떻게 돌아가나. 부디 건강하게 이 여정이 잘 끝났으면 좋겠어요."(홍씨)


(파리=연합뉴스) 송진원 특파원


프로필이미지

교통일보 다른 기사 보기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0
좋아요
0
감동이에요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가장 많이 본 기사더보기
  1. “강남 30분 시대”라더니…김포에 돌아온 건 반쪽 ‘서울역 직결’ 김포 정치권과 지자체는 GTX-D 서울역 직결안 통과에 환호했지만, 시민이 기대한 ‘강남 직결’은 빠진 채 확정됐다. 강남 수요와 도시 성장 전망을 외면했다는 비판이 나온다.김포시민이 기대한 건 ‘강남 30분 시대’였다. 정치인들은 수년간 이를 내세워 지역 여론을 달궜고, 서부권 광역급행철도(일명 GTX-D 선행구간)이 강남까...
  2. 대구 개인용달 화물차 ‘생계 위기’…택배 전환·번호판 충당 해법 모색 [대구경북취재본부 서철석 기자] 대구지역에서 운행 중인 1톤 개인용달 화물차들이 과잉 공급에 따른 심각한 경영난으로 생계 위협에 직면했다. 업계는 택배 전환과 번호판 충당을 핵심 해법으로 제시하며, 용달·택배 간 전략적 제휴를 통한 상생 방안을 촉구하고 있다.지역 용달 업계에 따르면, 현재 대구에는 개인용달 차량이 과도하...
  3. 더현대 광주, 북구-광주시 충돌…정준호 의원 “복합쇼핑몰 교통문제, 국회가 조정자 역할 나서야” 광주 북구가 ‘더현대 광주’의 건축허가를 조건부 승인했지만, 교통 인프라 개선을 두고 광주시와의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건축허가는 북구가 맡았지만, 교통대책 수립과 예산 편성 권한은 광주시에 있어 두 기관 간 역할 분담이 뚜렷하다. 해당 사업은 옛 전남방직·일신방직 터에 연면적 27만3천895㎡(지하 6층·지상...
  4. 애플페이 교통카드, 한국 대중교통 바꿀까? 아이폰이나 애플워치로도 교통카드를 쓸 수 있는 시대다. 애플페이가 한국 대중교통에 정식 적용됐지만, 기능적 제약과 정책 연계 미비 등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2025년 7월 22일, 애플과 티머니가 애플 월렛에 티머니 교통카드를 공식 통합한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아이폰과 애플워치 사용자도 스마트기기 하나로 전국 대중교통을 이용...
  5. 서울 지하철 부정승차, 끝까지 징수…우대·기후동행 돌려쓰기 집중 단속 서울교통공사는 지하철 부정승차에 법적 조치를 병행하고, 우대용·기후동행카드 부정사용에는 과학적 단속 시스템을 도입했다.7일 공사는 부정승차를 단순 위반이 아닌 ‘명백한 범죄행위’로 간주해, 소송부터 강제집행까지 끝까지 책임을 묻는다고 밝혔다. 통합 이후 지금까지 130여 건의 소송을 진행했으며, 지난해에는 22건...
  6. 서울시, 외국인 대상 택시 바가지요금 100일간 특별단속 서울시가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택시의 부당요금 요구, 승차거부, 불친절 등 불법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100일간의 집중 단속에 나섰다.서울시는 여름 휴가철과 관광 성수기를 맞아 외국인 택시 민원을 해소할 특별 대책을 시행한다고 6일 밝혔다. 인천·김포공항, 명동 등 외국인 밀집 지역에 단속 인력을 집중 투입하고, 승차거부...
  7. 신규 운면허 취득자 2년째 감소세…청년층 "기후동행카드면 충분" 신규 운전면허 취득자가 2년 연속 급감하면서 전국 운전면허학원이 매월 2-3곳씩 폐업 위기에 처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24년 신규 면허 취득자는 전년 대비 10% 감소한 80만명대로 떨어질 전망이며, 청년층을 중심으로 확산된 "기후동행카드면 충분하다"는 인식이 업계 존폐를 위협하고 있다.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7년 108만명이던 신규 운전...
  8. TS '오늘도 무사고' 캠페인 100일, 전국 안전문화 확산 성과 한국교통안전공단(TS)이 4월 30일 출범한 범정부 교통안전 캠페인 '오늘도 무사고'가 100일을 맞아 전국 14개 지역본부에서 232회 현장 캠페인을 실시하고 1만2천여 명의 국민이 참여하며 전국적인 교통안전문화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고 8일 밝혔다.한국교통안전공단은 이번 캠페인이 기존 개별적으로 진행되던 교통안전 홍보에서 벗어나 ...
  9. 8.15 광복절 세종대로 18시간 전면차단…폭주차량 특별단속도 서울경찰청은 제80주년 광복절 기념행사로 인해 15일 오전 6시부터 밤 12시까지 18시간 동안 세종대로(적선로~세종로) 일대를 양방향 전면 통제하고, 동시에 폭주·난폭운전 차량에 대한 특별단속을 실시한다고 11일 밝혔다.서울경찰청에 따르면 세종대로 등 교통통제는 총 3단계로 나눠 실시된다. 1단계는 지난 10일 오전 0시부터 16일 오후 ...
  10. ‘나중에 돌려드릴게요’ 복지이직금 900억 미지급…서울개인택시조합, ‘폰지 사기’ 논란 서울개인택시조합의 복지이직금 제도가 회비에 의존한 순차 지급 방식으로 운영되며, 누적 미지급금이 900억 원(2025년 8월 기준)을 넘어섰다. 신규 회비로 기존 수급자의 이직금을 충당하는 구조가 ‘폰지 사기’와 유사하다는 지적 속에, 이사장 교체와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제도 개혁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복지이직금은 개인택시 기사가 ...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