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 모든 게 굼뜨게 된다. 시각이 흐려지고, 청각은 둔해지고, 걸음걸이는 느려진다. 그래서인지 노인들은 교통사고에 항상 노출돼 있다. 횡단보도에서 노인들은 바쁘다. 마음은 초록색불이 켜져있는 동안 재빠르게 건너지만 몸은 전혀 따르지 못한다. 이래서 노인들은 보행 신호가 초록불로 켜지자마자 출발하지만, 절반도 못 간 상황에서 신호가 바뀌면서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
길을 걷거나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교통사고로 다치고 목숨을 잃는 노인이 좀처럼 줄지 않고 있다. 전체 보행 중 교통사고 사망자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계속 증가세다.
최근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보행 중 교통사고 사망자는 모두 1093명이었다. 이 가운데 만 65세 이상 노인은 628명으로 전체의 57.5%를 차지했다. 길을 가다 교통사고로 숨진 사람 10명 중 6명은 노인이라는 의미다. 게다가 2018년(56.6%), 2019년(57.1%)에 이어 3년 연속 비중이 늘고 있다.
지난 3년간(2018~2020년) 보행 중 교통사고 사망자 현황을 분석했을 때 노인에겐 길을 건널 때가 가장 위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 보행사고 사망자의 54.8%가 횡단 중에 발생했다. 사망자의 절반을 넘는 수치다. 걸음이 느린 탓에 제시간에 길을 다 건너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데다 무단횡단을 하다 사고를 당한 사례도 적지 않다.
지역별로 도시보다는 지방에서 노인 안전이 더 위협받고 있다. 지난해 지방의 노인 보행사고 사망자 비율은 무려 71.7%나 됐다. 도시지역보다 17.3%포인트나 높다. 차도나 길 가장자리로 통행하다 목숨을 잃은 노인도 30%가 넘는다.
공단은 지방 지역이 도시보다 상대적으로 인도가 부족하다 보니 노인들이 위험하게 차도나 길 가장자리로 다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노인의 신체적 특성과 지역별 상황에 맞는 보호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방의 경우 노인 통행이 잦은 도로를 중심으로 인도를 설치하는 게 필요하다는 지젹이다.
노인이 많이 이용하는 횡단보도에는 길을 건너는 사람이 있을 때 초록색 보행 신호를 자동으로 연장해주는 시스템의 도입도 고려해야 한다. 이 시스템은 현재 제주도와 파주(경기), 창원(경남) 등에서 시범 운영 또는 설치를 추진 중이다.
공단에 따르면 노인이 건너기 쉽도록 차로 폭을 좁히는 방안도 거론된다. 도로의 바깥쪽이나 안쪽을 좁혀서 보행자가 도로에 노출되는 시간을 가급적 줄여 사고 위험을 막자는 취지다. 주로 노인 통행량이 많은 지역이 대상이다.
끝으로 전문가들은 운전자의 보행자 보호 의식 강화도 요구된다는 의견이다. 지난 5월 공단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회전 차량의 절반 이상(53.8%)은 횡단보도에 보행자가 있어도 양보하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 또 26.9%는 양보는 했지만, 차를 완전히 멈추지 않고 보행자에게 계속 접근하면서 빠른 횡단을 재촉하거나 안전에 위협을 준 것으로 조사됐다.
박래호 기자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