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美 "배기량 기준 세제철폐" vs 韓 "관세 즉시철폐"
<배기량 기준 세제와 관세 철폐 `빅딜` 가능성도>
지난 12일 웬디 커틀러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미국측 협상대표는 "미국은 한국에 연간 4천대의 자동차밖에 못 파는데 한국은 미국에 80만대를 판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미국에 매년 엄청난 양의 자동차를 팔고 있으면서 정작 미국은 한국의 세제때문에 몇 대 팔지도 못하고 손해만 보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업체측의 한국에 대한 불만을 대변한 말이다.
그래서일까? 8차까지 가는 협상을 벌였음에도 자동차 분야는 한·미 FTA의 풀기 어려운 숙제로 남아 결국 고위급 회담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양측이 충돌하고있는 쟁점들이 어느 한쪽도 양보할 수 없는 사안들이어서 고위급 회담에서도 진통이 예상된다.
◇ 美 "배기량 기준 자동차 세제 개편" vs 韓 "관세 즉시 철폐"
한·미 FTA 자동차 분야의 핵심 쟁점은 배기량 기준 자동차 세제와 관세철폐다.
현재 우리나라 자동차 세제는 구입시 부과되는 특별소비세와 자동차세, 지하철 공채로 구성돼있다.
이 중 특소세는 배기량 800cc 미만은 면제, 2000cc 미만 5%, 2000cc 초과 10%이며 자동차세는 800cc 이하는 cc당 80원, 1000cc 이하 100원, 1500cc 이하 140원, 2000cc 이하 200원, 2000cc 초과 220원씩 부과된다. 즉 자동차 세제가 배기량을 기준으로 설정돼 있는 셈이다.
미국측은 수출품목 중 배기량이 큰 자동차가 많은 만큼 한국의 배기량 기준 세제로 인해 그만큼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을 불리한 요인으로 꼽고있다. 따라서 한국측의 배기량 기준 세제는 철폐돼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다.
하지만 정부는 미국측의 요구대로 배기량 기준 세제를 철폐할 경우 연간 4조원 이상의 재정 손실이 발생한다고 추산하고 있다. 산업자원부도 배기량 기준의 세제까지 없어지면 미국산 차량의 가격이 최대 21%까지 내려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우리측은 이미 특소세를 현행 2단계를 1단계로 축소하고 자동차세는 현행 5단계에서 2~3단계로 각각 축소하는 절충안을 제시했지만 미국측은 묵묵무답이다. 오히려 우리측의 관세 즉시철폐와의 `빅딜`을 요구하는 듯하다.
관세철폐의 경우에는 우리측이 공세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우리측은 현재 2.5%인 미국의 관세를 즉시 철폐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관세가 철폐될 경우, 미국시장에서 일본에게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국산 자동차가 가격면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미국은 앞서 언급한 우리의 배기량 기준 세제철폐와 연계해 우리측이 얼마나 성의를 보이느냐에 따라 결정하겠다는 입장인데다 즉시 철폐는 어렵고 단계적으로 철폐하거나 유예기간을 두겠다는 입장이어서 앞으로도 협상에 난항이 예상된다.
◇ "한·미 FTA는 우리 자동차 산업이 살 길"
그렇다면 이처럼 팽팽한 줄다리기를 펼치고 있는 자동차 분야가 타결될 경우 한국과 미국 중 어느쪽이 더 이득일까.
자동차 업계를 비롯한 한·미 FTA 찬성론자들은 한·미 FTA 자동차 시장 개방에 대한 미국 요구를 들어주더라도 국내 자동차 산업에는 별 타격이 없고 오히려 내수촉진에 도움이 되는 등 긍정적 요인이 많다고 주장한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 관계자는 "한·미 FTA는 중장기적으로 산업의 체질을 강화하고 경쟁력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며 "한·미 FTA야말로 우리 자동차산업이 살 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한·미 FTA가 체결되면 우리는 1700만대 규모의 세계 최대 미국시장을 보다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통상관계 개선으로 통상 비용을 절감할 수 있어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이미지가 제고돼 우리에게 더 이득이라는 주장이다.
또 가격때문에 구입을 망설였던 수입차들의 가격이 일제히 국산차 수준으로 떨어져 국내 소비자들의 선택의 폭이 넓져 여러모로 이득이라는 것.
아울러 염려했던 세수감소부문도 초기에만 일부 감소할 뿐 장기적으로는 예상외로 그리 큰 타격을 입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업계의 예상이다.
◇ "값싼 수입차 대거 등장, 국내 車산업 심각한 타격"
반면, 한·미 FTA 반대론자들은 관세를 철폐해야하는 FTA가 체결되면 자동차 관세율 인하폭이 미국보다 우리가 더 커 (한국 8%, 미국 2.5%) 결국 우리에게 손해라는 주장이다.
또 보호주의적 성향이 강한 민주당이 미국 의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보호무역주의 성향 국내법 강화와 자동차산업 글로벌화로 현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 구조가 증대, 값싼 미국산 일본차 등이 국내시장을 잠식할 우려도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현재 미국 현지공장을 통한 현지생산을 강화하려는 국내 완성차 업체들의 향후 계획으로 볼 때, 국내 자동차 생산 증가 효과보다는 오히려 대형 승용차와 화물차 분야에서 미국산 자동차 판매가 증가하면서 이 분야의 판매량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다.
민간 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전체 수출입량은 증가할지 모르지만 미국측의 요구대로 우리의 세제개편이 이뤄질 경우, 세제 개편에 따른 가격 인하 효과가 더해져 대형차와 화물차위주의 미국측이 더 유리하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우리의 가장 민감한 부문 중 하나인 농업분야와 자동차 분야를 이번 고위급 회담에서 `빅딜`을 통해 일괄타결할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오고 있다. 자동차 분야가 우리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에 그만큼 `빅딜`의 대상으로까지 거론되는 것이다.
이유야 어찌됐건 이제 공은 고위급 회담으로 넘어갔다. 고위급 회담에서 과연 우리는 어떤 결과물을 안고 돌아올 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