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용차로 출근하다 사고가 났더라도 달리 이용할 대중교통수단이 없었다면 이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등법원 행정8부(김인욱 부장판사)는 출근길 교통사고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달라며 한모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부지급처분취소 소송 항소심에서 1심과 달리 원고승소판결했다고 7일 밝혔다.
재판부는 "이용 가능한 다른 대중교통수단이 없어 출근 방법과 경로의 선택권이 주어졌다고 볼 수 없는 만큼 사고와 업무간에 직접적이고도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고 밝혔다. 명백히 회사 출근을 위해 이동을 하다가 당한 사고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합리적인 경로로 차량을 운행했고 임의로 시간을 바꿔 출근하지도 않은 점 등을 고려하면 사망 사고는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소송은 한씨의 출근이 회사의 객관적 지배·관리 아래 있었는지가 가장 큰 쟁점이다.
법원은 야근을 마치고 개인차량을 이용해 퇴근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한 경우에도 산재를 인정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개인 소유 차량에 대해 회사가 유류비 등 차량운행 경비를 지급하는 등 업무 전용차량이라는 점을 들어 회사가 제공한 교통수단에 준하는 차량으로 간주해 판단한 것이었다.
이번 출근길 산재 인정 판결은 회사에서 차량운행 경비를 제공하지 않은 순수한 개인차량이었다는 점에서 기존 판결보다 좀 더 산업재해 인정의 폭을 넓힌 것으로 해석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근길 산재 인정에 대해 대법원은 여전히 단단히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
대법원은 회사가 제공한 통근 차량 등을 이용하다 사고를 당하면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지만 개인 차량으로 출퇴근하다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는 '사업주의 지배·관리 하에 있지 않다'는 이유로 업무 관련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서울행정법원에서 자가용 출근 교통사고에 대해 산재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려 기존 대법 판례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었지만 2007년 대법원은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산재 불인정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건설회사에 다니던 한씨는 지난 2009년 경남 산청군에 위치한 건설현장으로 자신의 승용차를 이용해 출근하다 앞서 다른 사고로 견인되던 차량과 충돌해 병원으로 옮겨지던 중 내출혈로 사망했다.
유족은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유족급여 및 장의비를 지급하라고 소송을 냈으나 1심은 "한씨가 사고 차량의 유지·관리비를 모두 부담했고 출근 시간과 경로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다"며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