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통사고 80%, 당사자간 합의 의해 보험처리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당사자간 합의에 의해 보험처리되고 있는 교통사고가 절반을 넘는 것으로 나타나, 사고 당사자의 사고통지 의무를 강화해야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송윤아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의 교통사고 신고제도와 시사점' 보고서에서 "미국의 경우 사고당사자가 사고발생 후 바로 주정부 소관부서나 경찰서에 사고신고서를 제출하도록 되어 있는데 반해 우리나라는 대법원 판례로 인해 도로교통법에서 규정한 경찰신고 의무제도가 유명무실화돼 자동차 보험사기 만연 및 사고 당사자간 과실책임에 대한 갈등이 빈번하다"고 9일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개별주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인적피해가 난 교통사고는 예외없이 주정부 차량국과 경찰서에 사고내용을 신고해야 한다. 물적피해 사고에 대해서도 피해자가 사건 현장에 없는 경우에는 가해자가 반드시 경찰이나 법을 집행하는 기관에 신고해야 한다.
또한 경찰은 조사를 통해 작성된 사고조사보고서를 5일 이내에 주정부 내 차량국에 제출해야 하며, 이와 별도로 사고 당사자는 손해액이 1000달러가 넘는 경우 10일 내에 사고내용을 주정부에 알려야만 한다. 더불어 주정부 차량국의 모든 사고 보고서는 4년동안 보관된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경찰에 신고가 되지 않고 당사자 간 합의에 의해 보험처리되는 교통사고가 약 80%로 나타났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보고서는 "보험사가 교통사고와 관련해 공공수사기관의 공백을 메우는 데에는 한계가 있고 이는 사고의 조작·가공, 피해 과장 등 부정청구를 유발하는 한편 공정한 사고 내용의 규명을 어렵게 해 사고당사자 간 갈등을 초래한다"고 주장했다.
현행 도로교통법 제54조에 의하면 차의 운전 등으로 인해 사람을 사상하거나 물건을 손괴한 경우에 차의 운전자는 즉시 정차해 사상자를 구호하고 현장에 있는 경찰공무원이나 가장 가까운 경찰관서에 사고를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신고 내용에는 사고가 일어난 곳, 사상자 수 및 부상 정도, 손괴한 물건 및 손괴정도 등을 포함해야 하고 경찰은 운전자에게 현장에게 대기할 것을 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교통사고 발생 시에 운전자가 취해야 할 사항을 구체적으로 정해놓은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지난 1991년 '도로교통법상 운전자 등의 신고의무는 중상을 입은 피해자가 발생한 교통사고일지라도 당사자의 개인적인 조치를 넘어 경찰관의 조직적 조치가 필요할 때만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즉 공소권이 없는 교통사고에 대해서는 경찰 신고의무가 없다고 한 것이다.
또한 현행 교통사고처리특례법에 따르면 업무상 과실 또는 중대한 과실로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형법 268조의 업무상과실·중과실치사상죄 중 업무상과실치상죄나 중과실치상죄) 업무상 필요한 주의를 게을리하거나 중대한 과실로 다른 사람의 건조물이나 그 밖의 재물을 손괴한 운전자(도로교통법 제151조)에 대해서는 피해자의 명시적인 의사에 반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
다만, 중앙선 침범 등 중요 교통법규 위반으로 죄를 범하거나 피해자를 구호하지 않고 도주한 운전자, 피해자를 사고 장소로부터 옮겨 유기하고 도주한 운전자, 피해자가 신체의 상해로 인해 생명에 대한 위험이 발생하거나 불구가 된 경우에는 형사처벌을 받는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공소 대상이 아니라고 아예 경찰에 사고내용도 신고하지 않는 것이 다반사다. 송 연구위원은 "경찰은 말할 것도 없고 보험사에도 사고통지가 이뤄지지 않아 정확한 사고원인 규명과 피해정도 및 과실을 평가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며 "우리나라도 인적피해가 난 교통사고에 대해서는 모두 경찰에 신고하도록 하고 사고당사가가 보험금을 청구할 때, 경찰의 사고조사서를 함께 제출하도록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대부분의 교통사고에 대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한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을 폐지하지 않으면, 경찰 신고를 강제할 수 없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손보업계 관계자는 "업무상 과실로 사람을 다치게 했는데도, 교통사고라고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면, 굳이 경찰에 신고할 이유가 없다"며 "교통사고처리특례법이 폐지되지 않는 한 사고신고와 조사를 둘러싼 경찰, 보험사, 당사자간의 갈등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