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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택시 '곤두박질'…"자리다툼하다가 죽기까지"
  • 이병문 기자
  • 등록 2011-03-27 15: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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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반택시 비해 콜·카드결제 차별성 사라지고 요금까지 비싸
한 때 택시기사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모범택시가 곤두박질치고 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넥타이에 말끔한 정장 차림으로 검은색 고급 세단을 모는 모범택시 기사는 일반택시 기사로 10여년간 무사고 운행해야만 될 수 있기 때문에 자부심도 상당했다.

일반택시에 비해 절반 정도 일하고도 일반택시와 비슷한 수입을 올릴 수 있어 몸도 편하고 취객 등 '진상 손님'도 없어 스트레스도 덜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차량 가격만 1억원 가까이 들만큼 초기 투자비용이 높음에도 모범택시 기사일은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부터 상황이 크게 변하기 시작했다.

모범택시에만 있었던 콜 호출 시스템이나 신용카드 결제 등이 일반 택시에도 보편적으로 자리 잡으면서 차별성이 사라진데다 요금까지 비싸니 손님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최근에는 LPG 가격까지 올라서 콜비에 신용카드 수수료, 차량 할부대금 등까지 합하면 한달에 200~300만원을 벌어도 절반이 빠져나가 허덕이고 있다는 것이 모범택시 기사들의 하소연이다.

지난 23일 새벽 서울 서초구의 한 대형호텔 옆 통행로에서 모범택시 운전기사 2명이 자리다툼 문제로 택시 승강장 옆 7.5m 높이의 난간에서 몸싸움을 벌이다 함께 추락해 숨졌다.

호텔 앞에 택시를 세워두고 순서대로 손님을 태우는 모범택시 기사들의 다툼이 최근 손님이 줄어들면서 격해지다가 이런 비극으로 치달은 것이다.

평소 이들의 다툼을 지켜봤다는 동료 모범택시 기사는 "먹고 살기 위해 아등바등하다 벌어진 비극적인 일"이라며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모범택시 기사들이 새벽에 호텔에서 공항으로 이동하는 손님을 잡기 위해 새벽 1~2시쯤 미리 나와 줄을 서는 게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이렇게 일찍 나와 사실상의 노숙생활을 하다보니 졸음과 추위를 참지 못해 택시를 대놓고 자리를 비워 생기는 다툼이 빈번하다.

일부 대형호텔들은 로비 앞에 택시를 줄줄이 세우고 대기하는 행위를 금지해 모범택시 기사들은 자구책으로 동료들끼리 순번을 정해가며 자리가 비면 사비를 털어 산 무전기로 순서를 통보해 주고 있다. 자신의 순번이 돌아올 때까지 빌딩숲 사이 길목에서 주차단속을 피해 메뚜기처럼 이리저리 뛰며 하릴 없이 자신의 차례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3~4시간을 기다리다 4500원짜리 기본요금 손님이 걸리면 밥값도 못 벌어가는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천공항철도가 개통되는 등 더 값싸고 빠른 운송수단이 늘어나면서 모범택시 기사들의 설자리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이로 인해 모범택시에서 일반택시로 전환하는 기사들도 줄을 잇고 있다. 서울시 기준 지난 1992년 5000대로 시작한 모범택시는 2005년 3600여대, 올해에는 1800여대로 줄었다. 지난해에만 500여대가 서울시청에 일반택시로 전환신청을 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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