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사망 17명 등 31명의 사상자를 낸 경북 경주시 현곡면 남사재 전세버스 추락참사의 원인은 사업용 차량을 몰아서는 안되는 무자격 운전기사의 과실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18일 교통안전공단 등에 따르면 사고버스 운전기사 권모(56)씨는 1991년 6월 교통안전공단이 실시한 운전정밀검사에 응시했으나 부적격(5등급) 판정을 받은 뒤 재응시하지 않아 사업용 차량을 몰 수 없는 무자격 운전기사인 것으로 밝혀졌다.
운전정밀검사는 알코올 중독 등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지 보는 인성검사와 위급한 상황에서의 대처능력을 테스트하는 기기검사가 실시되는데, 사업용 차량 운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적격판정을 받도록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무자격자는 운전정밀검사 미응시자이거나 운전 중 중상 이상의 사고를 내 특별교정교육대상인데도 이에 응하지 않은 자, 1년 이상 대형차량 운전 경력 미소유자 등을 말한다. 이들은 운전 및 위기대처능력이 현저히 떨어져 대형 사고를 낼 우려가 높다. 하지만 행정단속이 느슨한 데다 규정을 위반할 경우 사업주는 60만원 과징금을, 운전자는 50만원 과태료만 부과되는 등 처벌규정도 매우 약해 재범의 소지가 큰 만큼 법적·제도적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정확한 자료는 없지만 전국 전세버스 운전기사의 10~15%가 무자격자로 추정되고 있다. 전세버스업계에 이처럼 무자격자 운전기사가 많은 이유는 경기침체에다 신종플루까지 겹치면서 손님이 줄어들자 평소에는 버스 보유대수보다 훨씬 적은 운전기사를 두고, 관광수요가 많은 시기에는 임시 운전기사를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의 경우 총 전세버스는 58개 업체 1636대이지만, 고용 운전자는 1300~1400명에 그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상당수 업체들이 지입제로 운영되는 바람에 사실상 차주들인 무자격 운전기사들이 판을 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또 이번 사고를 조사중인 경북 경주경찰서는 "내리막길에서 저속 기어 변속을 제대로 하지 못해 운전 중 핸들조작 등에 일부 실수가 있었다"는 권씨의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17일 정확한 사고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전문가들과 함께 사고현장과 타이어 마모자국(스키드마크)을 조사하는 등 현장감식을 실시했다. 경찰은 타이어 마모자국이 130m에 달하는 점으로 미뤄 내리막길에서 차체가 제동된 상태에서 밀렸거나, 핸들이 꺾인 뒤 미끄러지면서 타이어 측면이 노면과 마찰을 일으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은 권씨가 제동장치에 이상이 있었다고도 진술함에 따라 차량결함으로 인한 사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사고버스에 탑승했던 노인들은 당초 1인당 2만2000원씩 내고 울산에서 온천관광과 식사를 한 뒤 귀가할 예정이었으나, 사고 3일 전 전세버스업체의 제안으로 경북 영천의 건강보조식품 매장을 경유하는 1만원짜리 코스로 변경하는 바람에 사고지점을 운행하게 됐으며, 사고 당일 안전벨트를 매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경주 관광버스 참사를 수사 중인 경찰은 18일 운전자 권씨를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그러나 경찰은 권씨가 전치 6주의 중상을 입은 점을 감안해 일단 신병만 확보하고 치료가 마무리되면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이병문 기자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