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발유값이 연일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가운데 서울 일부지역의 휘발유값은 ℓ당 2000원선 돌파를 눈 앞에 두고 있다.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다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일이 아닐 것이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70달러 선이라고 하는데 주유소 휘발유 값은 L(리터)당 1800원에 육박하고 있다. 작년 5월 휘발유 가격이 L당 1800원을 넘었을 때는 국제 원유가가 배럴당 100달러가 넘는 초고유가 시기였다. 원유 값은 작년보다 내렸는데 휘발유 값은 왜 이렇게 오르는 것일까?
현재 국제 유가는 배럴당 70달러(두바이유 기준) 수준이지만, 서민들의 체감 기름 가격은 이미 '유가 100달러' 시대에 진입해 있다. 1년 전보다 국제 유가는 30% 이상 낮은 상황이지만 휘발유 값은 작년 수준에 육박하고 있다.
8월30일 기준 전국 주유소의 휘발유 평균 가격은 L당 1694.29원이다. 서울 영등포의 한 주유소는 휘발유 값이 L당 1998원을 기록하는 등 서울시내 23개 주유소에서 L당 1900원대에 휘발유를 팔고 있다. 곧 2000원을 넘을 태세다.
전국 평균 휘발유 값이 1700원대로 올라선 것은 작년 4월23일. 당시 두바이유 가격은 배럴당 108달러를 기록하며 초고유가 행진을 이어갈 때였다. 8월 현재 두바이유는 배럴당 71.50달러로, 당시와 비교하면 30% 정도 낮다. 그런데도 주유소 기름 값이 비싼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세금 때문이다. 작년 3월 정부가 적용했던 유류세 10% 감면 제도가 올 들어 폐지됐다. 작년 5월 휘발유 1L에 붙는 유류세는 전체 소비자 가격의 47.3%인 829.5원이었다. 하지만 8월 현재 그 비중은 53.4%인 898.9원으로 늘었다. 1000원어치를 주유하면 534원은 세금으로 내는 셈이다.
여기에 정부는 작년 말 정유사들이 외국에서 원유나 휘발유·경유·중유를 들여올 때 부과하는 관세율을 1%에서 올해 3%로 인상했다. 관세는 유류세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정유사의 공급 가격에 포함된다. 이렇게 유류세와 관세 인상으로 L당 90~100원가량의 인상 효과가 생겼다. 여기에 작년 4월 달러당 970원대였던 환율이 1200원 선으로 20% 이상 오르면서 국내 휘발유 가격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
정유업계에 따르면 올 들어 400원 이상 오른 휘발유 가격 가운데 실제 원유가격 인상으로 인한 것은 약 100원에 불과하다고 한다. 정부의 세금과 환율이 기름 값을 올린 주요 원인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정유사들도 국제 유가가 떨어질 때에는 세전(稅前) 가격을 찔끔찔끔 내리면서도 유가가 오를 때는 상승폭에 거의 비례해서 주유소 공급 가격을 올리고 있다. 국제유가가 한창 떨어졌던 지난 1월 말 두바이유는 배럴당 44.86달러로 작년 6월 말(136.65)에 비해 67% 하락했지만, 이 기간 국내 정유사의 주유소 세전 공급 가격은 53%밖에 내리지 않았다. 그랬던 것이 올해 들어 7월까지 국제 유가가 50% 올랐을 때 정유사들은 주유소 공급 가격을 45% 올렸다.
국제 유가는 연말까지 계속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연말까지 두바이유 가격이 배럴당 80달러 이상까지 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휘발유 가격은 세금 비중이 너무 커 소비자 부담이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미국처럼 자동차가 생활화된 나라라면 폭동이 일어날 수준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07년의 경우 휘발유에 붙는 세금 비중이 우리나라는 57.9%로 미국(17.7%), 일본(44.7%), 캐나다(32%)보다 높으며 세계 최고 수준이다. 석유공사에 따르면 물가와 구매력 등을 감안해 휘발유 가격을 환산한 결과 우리나라의 휘발유 가격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가운데 4번째로 높다. 지난해 휘발유 가격은 L당 2.459달러로 미국(1.017달러), 일본(1.489달러)보다 훨씬 비싸다.
정부는 입만 열면 서민을 위한 정부라고 말한다. 하지만 오른 기름 값 생각하면 분통이 터진다는 서민들이 대부분이다. 서민을 위한 정부라면 유류세를 낮춰 서민들의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