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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위반 범칙금 부자가 더 내는게 맞다
  • 이병문 기자
  • 등록 2009-08-07 12:4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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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대통령의 제안 왜 해프닝으로 몰고가나?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국무회의에서 "교통법규 위반 범칙금을 '소득 연계형'으로 할 수 없느냐"고 제도 개선을 제안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시시비비가 일고 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의 이같은 제안에 의외로 반대하는 여론이 높은 것같아 '우리나라엔 부자가 꽤 많구나'하는 착잡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더 나아가 미리 겁먹은 부자들의 여론 조작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먼저 대통령의 제안을 처음 보도한 C일보의 기사는 대통령의 제안을 한낱 해프닝이라는 식으로 몰았다.

C일보는 이 대통령이 각 부처 장관들을 모아 '토론형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불쑥 이런 제안을 꺼냈으며 '깜짝 아이디어'라고 평했다. 중요한 국정 현안 문제를 토론하는 자리에서 심사숙고없이 이야기했다는 뉘앙스를 풍긴 것이다.

그리고 일부 참석자들이 "범칙금은 바로 스티커를 발부해야 하는데 우리는 현장에서 개인별 소득액을 확인해 범칙금을 차등 부과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다"고 문제를 제기했다고 했다. 현실을 제대로 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한 것처럼 들리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이 "범칙금은 (소득액을) 확인해보고 나중에 부과하면 되지 않느냐"고 재반론하자, 김경한 법무장관이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대답했다고 보도했다. 마치 대통령이 억지를 부리고 있으며 고집이 센 것처럼 표현했다.

C일보는 이 대통령의 '깜짝 아이디어'에 대해 "친(親)서민 행보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는 분석이 많다고 평했다. 이 대통령의 서민 행보가 자칫 포퓰리즘으로 흐르는 것 아니냐고 좀더 분명하게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쪽도 있다고 전했다. C일보는 여권 관계자의 말을 빌여 "정권 초기엔 '기업 프렌들리'가 MB 브랜드였는데, 어느 순간 '서민 프렌들리'로 바뀌고 있다. 정책은 일관성 있는 철학을 바탕에 깔고 있어야 하는데, 그저 인기 있으면 이것저것 모두 광주리 담겠다는 태도면 곤란하다"고 보도했다.

아하! 이래서 C일보가 친부자, 기득권층을 대변하고 있다고 욕을 먹는구나! 이 기사를 읽고 거의 한평생을 구독해오고 있는 C일보에 대한 신뢰가 와르르 무너졌다.

C일보뿐만 아니다. 상당수 유력 언론들이 이 대통령의 이런 제안을 일종의 해프닝으로 취급, 보도하지 않았다. 일부 보도한 매체들이라도 '깜짝 제안'이나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한나라당은 아무런 논평도 내지 않았으며 민주당은 이 대통령의 친서민 정책 제안을 양두구육(羊頭狗肉)으로 의심된다고 평가했다. 전형적인 포퓰리즘에 불과하며 국면 전환용으로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MB정부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헛갈리게 한다고 말했다. 참으로 민주당의 한계와 옹졸성을 느끼게 한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민주당 강창일 의원에게 제출한 교통범칙금 차등부과제도에 대한 입법조사 회답자료에서 "차등부과제도를 시행하는 국가와 달리 현재 우리는 벌금 산정의 기초인 경제적 능력에 대한 판단자료가 드러나 있지 않다"고 밝혔다. 입법조사처는 또 "개인의 재산상태를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전산망 개발도 미흡하다"며 차등부과제도 도입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견해를 내놨다.

이처럼 이 대통령의 교통범칙금 차등부과제도 제안에 대해 여러 곳에서 반대하는 반응이 나타났다.

하지만 요즘 자동차운전자들을 가장 화나게 하는 것은 교통법규 위반의 주범이 고급 승용차들이라는 것이다. 신호위반과 불법 유턴을 하고, 고속도로의 버스 전용차로를 버젓이 달리는, 그리고 좌회전 차선의 앞으로 가서 직진 차선으로 끼어드는 고급 승용차들. 세상에 바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어쩌면 고급 승용차라서 더 눈에 띄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들이 범칙금 몇 만원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일부 언론의 보도처럼 우리는 현재 개인별 소득액을 확인해 범칙금을 차등부과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이미 우리의 소득은 국세청이나 국민연금, 건강보험 등에 의해 어느정도 파악되고 있다. 또 그렇지않더라도 투명한 경제정의 사회 실현을 위해 소득 확인을 추진하면 된다. 이를 겁내는 것은 고소득 탈세자들과 교통범칙금 몇 만원에 아랑곳없이 교통위반을 밥먹듯이 하는 사람들뿐이다.

핀란드 등 북유럽에서는 '소득 연계형' 범칙금 제도를 실시, 지난 2004년 규정속도 25마일 구간에서 50마일로 달린 백만장자가 2억5140만원의 범칙금을 부과받은 사례가 있다. 일률적으로 똑같은 교통범칙금 부과는 우리 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나타나는 문제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매년 수억원, 수십억을 버는 사람과 최저생계비에도 미치는 못하는 수입으로 살아가는 사람, 돈이 많아서 놀러다니는 사람과 차 한대 운전해서 바쁘게 살아가는 생계형 운전자가 똑같은 금액의 교통위반범칙금을 내는 것은 큰 모순이다. 교통위반범칙금은 형벌이 아니라 행정법규 위반에 대한 제재이므로 각 개인별 수입에 따라 그 강도가 다르며 그 효과 또한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똑같은 교통위반에 걸렸더라도 교통범칙금을 부자는 더 내고, 서민은 덜 내도록 하는 것이 옳다. 이는 요즘 부쩍 강조되고 있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와는 다르다. 정의로운 사회와 교통질서 확립을 위한 기본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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