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2억3천만원 적자…올해도 부채증가 불보듯
<연료값 절감 위해 준중형 택시 도입으로 돌파구>
운송수입금 전액관리제를 시행하고 있는 일진운수(서울 도봉구 창2동:보유대수 98대)의 고민이 갈수록 깊어져 가고 있다. 전액관리제는 말 그대로 수입금 전액을 회사에 납부하고 회사는 기사에게 이에 상응하는 월급을 지급하는 제도다. 일정금액의 사납금을 정하거나 회사가 차량운행에 필요한 연료비, 차량수리비 등 제반 경비를 기사에게 부담시키는 행위는 금지돼 있으며 이를 어길시 회사는 물론 기사도 처벌을 받도록 돼 있다.
그러나 전액관리제는 택시회사는 물론 상당수 기사들도 외면하는 바람에 사실상 물거품이 돼버린 실정이다. 택시회사는 이익 내기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고, 기사들은 사납금만 입금시키면 나머지를 다 갖고 갈 수 있는데 애써 번 돈을 왜 모두 회사에 주느냐며 외면하고 있다.
23일 일진운수에 따르면 지난해 기사 1인당 운송수입금은 한달 평균 300만3천원, 월급으로 155만4천원을 지출했다. 기사 월급이 무려 수입금 대비 51.7%에 달한다. 일진운수는 나머지 돈으로 연료비, 차량 구입비 및 수리비, 사무직 및 정비공 인건비 등에 써야 했다.
택시연료인 LPG 값은 최근 1년6개월간 49.4% 인상돼 엄청난 경영압박을 가져오고 있다. 지난 1999년 일진운수의 연료비 부담비율은 운송수입금(매출액) 대비 9.1%를 차지했으나 LPG값 급등과 함께 매년 상승하면서 지난해엔 23.7%, 올 9월엔 28.4%까지 올랐다.
이런 형편이니 적자운영은 당연한 일이다. 일진운수는 작년 한 해에만 2억3천만원 적자를 기록했다. 그나마 자가 차고지이기 때문에 임대료가 나가지 않는 것을 큰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일진운수는 올 한 해 더욱 많은 적자를 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미 차고지를 담보로 은행에서 4억원을 빌려썼는데 올해 또 1억원을 추가대출받을 계획이다. 대출금 상환도 큰 문제지만 이자 지출은 또 다른 경영압박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기사가 쓰는 연료값을 회사가 모두 부담하는 일진운수로서는 LPG값 상승이 큰 고민이다. 기사들에게 연료를 아껴쓰라고 수시로 강조하지만 차를 몰고 나가면 기사들이 알아서 절약하는 것 이외엔 방법이 없다.
일진운수는 궁리 끝에 지난해 봄 택시업체 중 처음으로 1,600cc급 쎄라토 택시 22대를 도입 운영했다. 이어 지난달부터 같은 급 아반떼 9대를 도입했다. 아반떼급 준중형 택시는 쏘나타·로체 등 중형 택시보다 연료비가 30% 이상 절감된다. 하지만 일진운수는 차량구입비 절감 혜택은 보지 못했다.
일진운수는 그동안 자동차메이커에 준중형급 LPG차를 만들어 달라고 꾸준히 요구했지만 거부당했다. 완성차업계는 준중형 LPG차를 생산하면 택시·렌터카·장애인 수요가 준중형차로 몰려, 기존 중형 LPG차 판매가 급감할 우려가 크다는 이유로 생산을 계속 거부하고 있다. 서울시는 준중형 택시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완성차 업계에 준중형 LPG차 생산을 강제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일진운수는 결국 쎄라토 택시와 마찬가지로 휘발유차를 구입한 뒤 직접 LPG로 개조해 운행하기 시작했다. LPG 개조비를 포함할 경우 아반떼 택시의 초기 구입비는 쏘나타보다 65만원 가량 오히려 비싸다.
일진운수 박철영 전무는 "LPG 값이 너무 올라 중형차만 운행해서는 도급 등 불법을 저지르지 않고 이익 내기가 불가능하다"며 "차메이커가 서둘러 준중형 LPG차를 생산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준중형 택시 운행은 법규상 문제가 없다. 자동차운수사업법에 '중형 택시는 1500cc 이상의 승용차'라고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아반떼는 과거엔 1.5L급(1498cc)이었지만 최근엔 1.6L급(1596cc)으로 바뀌어, 법규상으로는 엄연한 '중형 택시'다.
승객과 기사의 만족도도 높다. 일진운수 기사들은 "손님 대부분이 1~2명인 데다, 지금 나오는 준중형차는 10여 년 전 중형차보다 실내가 더 넓어 손님들 만족도에 큰 차이가 없다"며 "좁은 골목길 운전이 쉬워 기사들도 좋아한다"고 말했다.
준중형 택시가 보급될 경우 요금 인하도 가능하다. 준중형뿐 아니라 소형·경차 택시를 만들어 요금을 다양화하면, 승객 부담도 덜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부산시·제주도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은 준중형·소형택시 도입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교통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준중형 택시는 택시업체의 원가 절감과 국가적인 에너지 절감, 택시 차종의 다양화 등을 위해 찬성하는 의견이 많다.
택시업체에서는 드물게 수입금 전액관리제를 시행하고 있는 일진운수가 경영난 극복을 위한 돌파구로 선택한 준중형 택시가 빛을 볼 수 있을런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