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자동차는 전자제품”…고 이건희 회장의 선견지명
  • 이병문 기자
  • 등록 2020-10-27 09:58:31

기사수정
  • 삼성자동차 못 이룬 꿈으로 남았지만 전장사업에서 새 성장동력 확보

르노삼성차 부산공장. (제공=르노삼성차)

20년전 쯤인가. 자동차정비업계의 한 원로 사장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언론인 그리고 교통전문지 기자라는 직업과 관련,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게 됐다.

 

이 정비업체 사장은 정비업의 발전은 물론 전반적인 교통산업의 미래를 추구하는 열정적인 분이었다. 정비사 직원들의 업무 향상과 지식 습득을 위해 교통전문지를 구독하게 할 정도였는데 언젠가 직원들이 전자전문지로 바꿔 달라는 요청이 있어 신문을 바꿔주었다고 한다. 

 

자기네들에게 직접 도움이 되는 전문지는 ‘교통’보다는 ‘전자’라는 것이다. 이때 이미 자동차정비 현장에서는 ‘자동차는 전자제품’이라는 인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당시 교통전문지 기자로서 신선한 충격을 받고, 언론의 역할이나 가야 할 방향 등 여러 가지를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삼성을 세계 일류 기업으로 일궈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별세했다. 고 이건희 회장과 관련된 수많은 기사를 접하면서 “자동차는 전자제품”이라는 그의 선견지명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20년전 취재 현장의 기억이 다시 떠오른 것도 이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에게 자동차 사업은 꿈이자 필생의 도전이었지만, 삼성자동차는 삼성이 진출했다가 가장 크게 실패한 사업으로 꼽힌다. 

 

유년시절부터 자동차에 심취해 있던 이 회장은 자동차를 직접 분해하고 조립하는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자동차 ‘마니아’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것이 자동차사업에 뛰어드는 동기가 됐다고 일부 언론들은 지적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많이 다르다.

 

이 회장은 1997년 에세이에 “나는 자동차 산업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공부했고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전 세계 웬만한 자동차 잡지는 다 구독해 읽었고 세계 유수의 자동차 메이커 경영진과 기술진을 거의 다 만나봤다. 즉흥적으로 시작한 게 아니고 10년 전부터 철저히 준비하고 연구해왔다”며 자동차 산업에 대한 깊은 애착을 드러냈다.

 

에세이에서는 앞으로 자동차와 전자제품 간의 경계가 모호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회장은 “오늘날 자동차는 부품 가격으로 볼 때 전기전자 제품 비율이 30%를 차지한다. 물론 누구도 자동차를 전자제품으로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10년 이내에 이 비율은 50% 이상으로 올라갈 전망이다”라고 썼다.

 

이어 “그렇게 되면 이것이 과연 자동차인지 전자제품인지가 모호해진다. 그때 가면 아마 전자 기술, 반도체 기술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자동차업을 포기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올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자동차가 스마트폰과 같은 하나의 전자제품이라는 발상이 보편화된 시점이 2014~2015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20년을 앞서는 선견지명을 보여준 것이다. 

 

이 회장은 1995년 삼성자동차를 설립해 자동차 시장에 출사표를 던질 때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제가 자동차를 잘 안다고 자동차사업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자동차는 10년 후 20년 후에도 삼성이 먹고 살 사업이라는 판단이었다. 앞으로 5∼6년 동안 10조원을 자동차에 투자해도 이익은 거의 안날 것이다. 하지만 한국 자동차사업 발전을 위해 10조원을 기부한다는 자세로 사업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 회장이 자동차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자동차 사업에 진출해 실패했다는 식으로 폄훼하지만 이건 정말 아니다. 이 회장은 이미 25년 전 전기차 시대의 도래를 예고하고, 자동차를 삼성의 장기 성장계획의 큰 축 중 하나로 봤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 회장은 기아차 도산 사태와 IMF 외환위기까지 닥치면서 결국 삼성자동차를 포기했지만, 삼성그룹은 전기차 배터리와 전장부품 사업에 진출해 자동차 관련 사업을 삼성그룹 미래 성장동력의 한 축으로 키우고 있다. 대표적으로 삼성은 지난 2016년 미국 전장 기업 하만을 80억달러(약 9조원)에 인수하면서 전장사업에서 새 성장동력을 확보했다.

 

삼성SDI는 전기차 배터리(2차전지)를 생산하는 대표 기업으로, 다가올 전기차 시대를 맞이할 채비를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삼성SDI는 올해 1~8월 세계에서 판매된 전기차 배터리 점유율 순위에서 4위를 기록했다. 

 

자동차사업은 이 회장의 못 이룬 꿈으로 남았지만 글로벌 사업가로서 그의 탁월한 미래감각과 자동차사업에 대한 그의 깊은 애착과 의지와 노력, 열정, 전문지식은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가 자동차사업에 실패했다고 해서 폄훼해서는 안된다.

 

고 이건희 회장의 명복을 빈다.

 

TAG

프로필이미지

이병문 기자 다른 기사 보기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가장 많이 본 기사더보기
  1. 대구교통공사 등 3곳 철도안전관리 '최우수' 국토교통부와 한국교통안전공단은 국내 21개 철도운영자 및 철도시설관리자(이하 철도운영자등)를 대상으로 올해 1월부터 시행한 ‘2023년 철도안전관리 수준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대구교통공사올해 21개 철도운영자등의 수준평가 결과, 평균점수는 85.04점을 기록하여 작년(86.74점)보다 소폭 하락했으나, 과거 5개년 평균(83.39점) ...
  2. 5월 20일부터 불법자동차 일제단속...자동차 불법 튜닝, 불법명의, 무단방치 등 국토교통부와 행정안전부는 질서있고 안전한 도로환경 조성을 위해 5월 20일부터 6월 21일까지(한 달간) 경찰청, 지자체 등과 합동으로 불법자동차 일제단속을 실시한다. 불법자동차 단속 자료사진 주요 단속 대상은 불법튜닝 및 안전기준 위반, 불법명의(일명 대포차), 무단방치 등 교통질서를 어지럽히는 불법자동차이다. 특히 이륜
  3. 제21회 자동차의 날, 미래모빌리티 시장 선도 다짐 산업통상자원부는 자동차 기업 임직원 등 자동차업계 관계자 300여 명과 강경성 1차관이 참석한 가운데 제21회 ‘자동차의 날’ 기념행사를 9일 서울 JW메리어트에서 개최했다.  강경성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은 2024. 5. 9(목) 14:30 서울 강남구 JW메리어트호텔 그랜드볼룸에서 강남훈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장, 김동욱 현대자동차...
  4. 광주시 "택시부제 재도입 추진"…국토교통부에 심의 신청 광주시가 택시부제를 부활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광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광주시는 16일 택시부제를 다시 도입하려고 최근 국토교통부 택시정책위원회에 심의를 신청했다.국토교통부는 2022년 11월 특광역시를 포함한 33개 지자체를 택시 승차난 발생지역으로 보고 택시부제를 해제했다.법인 택시 업계는 그동안 부제 해제로 택시가 과.
  5. ‘한강 리버버스’ 명칭 공모…13일~22일 국민 누구나 참여 가능 서울시가 전 국민의 참신한 아이디어로 오는 10월 한강에 선보이는 수상 교통수단 ‘한강 리버버스’의 새로운 이름을 짓는다. 서울시는 13일부터 22일까지 10일 동안 `한강 리버버스`에 대한 명칭 대국민 공모를 실시한다. 서울시는 이달 13일(월)부터 22일(수)까지 10일 동안 ‘한강 리버버스’에 대한 명칭 대국민 공모를 실
  6. 교통사고 사망자 연간 100명대…부산시, 맞춤형 대책 마련 교통사고 사망자 연간 100명대…부산시, 맞춤형 대책 마련 고령자·이륜차·화물차 안전 강화 중점 4개 분야 35개 과제 추진 부산미래혁신회의 [부산시 제공] (부산=연합뉴스) 조정호 기자 = 부산시가 교통사고 사망자를 대폭 줄이기 위해 교통사고 취약 분야에 대한 맞춤형 안전대책을 마련했다. 부산시는 16일 오전 도로교통공단 부산지부 교...
  7. 구로구, 어린이 자전거 교통 안전교육 실시 구로구가 11월 8일까지 ‘어린이 자전거 교통 안전교육’을 실시한다. 2024년 찾아가는 자전거 교통 안전교육에서 교육을 듣고 있다. 어린이 자전거 교통 안전교육은 어린이들에게 체계적으로 자전거 교통안전에 대해 교육함으로써 교통사고를 예방하고 올바른 교통문화를 정착하기 위해 마련됐다. 교육 대상은 어린이집, 유치
  8. 日혼다, 전기차·소프트웨어 투자 2배로 늘린다…"87조원 투입" 일본 자동차 업체 혼다가 2030년까지 전기차와 소프트웨어 분야에 10조엔(약 87조원)을 투자한다고 16일 밝혔다.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과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미베 도시히로 혼다 사장은 이날 도쿄에서 개최한 설명회에서 이 같은 계획을 발표했다.혼다는 지금까지 전기차 등에 5조엔(약 43조5천억원)을 투자할 방...
  9. 여수시 지역교통안전협의체, 화물자동차 불법운행 단속 나서 여수시 지역교통안전협의체가 지난 8일 화치동 산단주유소 삼거리에서 화물자동차 불법운행 단속에 나섰다.  여수시 지역교통안전협의체가 지난 8일 화치동 산단주유소 삼거리에서 화물자동차 불법운행 단속을 하고 있다. 시에 따르면 ‘지역교통안전협의체’는 시 교통과, 여수경찰서, 한국교통안전공단 광주전남본부 등 교통
  10. 인천시, 남동택시쉼터 환경개선 완료 인천광역시는 택시운수종사자들에게 쾌적하고 편안한 휴식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기존 남동택시쉼터의 환경을 개선하고 전기 충전기 설치도 완료했다고 밝혔다. 남동택시쉼터개소한 지 10년 이상 돼 노후된 남동택시쉼터 내부를 리모델링해 1층에는 졸음운전을 방지하기 위해 쉴 수 있는 카페 공간을 조성하고, 2층에는 장시간 운전으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