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등 완성차 업계와 카드·캐피털사가 카드복합할부상품(이하 복합할부)을 놓고 1년 가까이 사활을 건 싸움을 벌이고 있다.
통상 자동차 할부는 캐피털사로 불리는 할부금융사가 자동차 값을 대납해주고 고객이 차 값을 캐피털사에 매달 갚아 나가는 구조다. 이에 비해 복합할부는 고객이 신용카드로 차값을 결제하면 하루 뒤에 카드사는 완성차업체에 차값을 지급하고 이틀 뒤에 캐피털사로부터 해당 대금을 받는다. 그 다음 고객이 캐피털사에 매달 차값을 갚아 나가는 것은 기존 자동차 할부와 동일하다.
고객이 차값을 카드로 결제하게 되면 이들 카드사와 가맹점 계약을 맺고 있는 현대차는 차값의 1.9%에 해당하는 카드 결제 수수료를 물어야 한다. 현대차 입장에서는 기존 자동차 할부 프로그램으로 차를 팔면 부담할 필요가 없는 수수료 비용이 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고객 입장에서 보면 얘기는 또 달라진다. 복합할부는 현대차 등 완성차업체가 부담하는 카드 결제 수수료를 카드사, 할부금융사, 고객, 자동차 딜러와 나눠갖는 구조이기 때문에 고객 입장에서는 기존 자동차 할부 프로그램 보다 혜택이 많다.
카드사는 고객에게 차값의 0.2% 정도를 포인트 또는 캐시백으로 돌려준다. 현대차가 대놓고 복합할부 상품 자체에 문제를 제기할 수 없는 이유다. 게다가 현대·기아차의 국내 시장점유율이 70% 안팎을 기록하면서 계열 금융사를 통한 할부금융이 독과점 시비를 낳고 있는 것도 현대차로선 아킬레스건이다.
카드업계의 복합할부 취급실적은 2010년 8654억원에서 2013년 4조5906억원으로 5배 이상 급증했다. 그 결과 현대차 등 완성차 업계가 복합할부로 지급하는 수수료도 4년간 1872억원이나 덩달아 늘었다. 급기야 현대차는 지난해 3월 금융감독원에 복합할부 폐지를 건의했다. 금융당국이 공청회를 열었지만 현대차와 카드업계의 뚜렷한 입장차만 확인했을 뿐이다.
이때부터 싸움은 각개전투 양상으로 펼쳐진다. 현대차가 가맹점 계약 연장을 놓고 개별 협상에 나선 것이다. 현대차는 카드사의 신용공여기간이 2~3일에 불과해 카드사가 부담하는 리스크가 거의 없는 만큼 수수료율을 체크카드 수준으로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용공여기간이란 고객이 카드로 물건을 사면 카드사가 대금을 제조사에 미리 갚아준 날로부터 고객이 카드값을 갚는 날까지의 기간이다. 이 기간동안 카드사들이 돈을 떼일 위험과 시중금리 등을 감안해 가맹점 수수료율이 매겨진다.
일반적인 신용카드 결제에서 카드사의 신용공여기간은 30일 정도다. 하지만 복합할부의 경우 2~3일에 불과하다. 이 부분을 현대차가 공격하고 나선 것이다. 신용공여기간이 일반 결제의 10분1 밖에 안되니까 복합할부 수수료를 체크카드 수준인 1.5%선으로 내려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현대차는 이런 논리를 활용해 국민카드와의 가맹점 협상에서 복합할부 수수료율을 1.85%에서 체크카드 수준인 1.5%까지 낮추는데 성공했다. BC카드는 협상이 결렬되면서 아예 복합할부를 취급하지 않기로 했다. 카드업계는 현대차의 주장대로 복합할부 수수료율을 양보하게 되면 ‘적격비용’(원가) 이하로 떨어져 역마진이 난다는 입장이다.
현대차는 신한카드, 삼성카드와 가맹점 연장 계약을 앞두고 있다. 신한카드와 가맹점 만료일은 오는 15일이며 삼성카드와는 내달이다. 삼성카드의 카드복합할부 비중은 현대차 자회사인 현대카드를 제외하면 카드업계 1위다. 신한카드는 삼성 다음이다.
삼성카드는 현대차의 논리에 반격하기 위해 이달초 신용공여기간을 일반 상품과 같이 30일 수준으로 늘린 새 복합할부 상품을 내놓을 계획이다. 삼성카드는 신용공여기간을 2~3일에서 30일로 늘리면 수수료율 0.2%포인트에 달하는 리스크가 발생하지만 현재 1.9%의 수수료율을 1.5%로 낮추는 것보다 낫다는 계산이다. 일부 다른 카드사도 유사한 상품 출시를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현대차의 대응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병문 기자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