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가벼운 부상의 교통사고도 경찰에 신고해야 보험처리가 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어 찬반 논쟁이 뜨겁다. 이 정책의 득과 실은 무엇일까?
현행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사람이 다친 사고는 경찰에 신고하도록 돼 있지만 이 법조항은 사실상 사문화됐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1990년 “신고의무가 헌법상의 진술거부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며 도로교통법의 신고의무 조항에 대해 한정합헌 결정을 내렸다. 대법원은 1991년 “신고의무는 모든 경우에 요구되는 게 아니며, 피해자 구호 등을 위해 경찰의 조치가 필요한 경우에만 요구된다”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부상이 가볍고 가해자가 피해자와 합의하면 경찰에 따로 신고할 필요가 없었다. 입원이나 치료 등의 보험금을 청구할 때도 의사의 진단서만 있으면 가능하다.
하지만 국토교통부는 이 때문에 교통사고 경각심이 줄어들고 보험사기와 보험금 부정청구가 증가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적 피해가 가벼운 교통사고라도 경찰의 사고증명서를 첨부해야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도록 자동차손해보상배장법(일명 자배법)을 개정한다는 방침이다.
<만연한 보험 사기 근절 가능>
법 개정에 따른 장점으로는 우선 보험사기나 나이롱 환자가 경찰의 확인을 통해 원천적으로 차단될 것으로 보인다. 보험사기로 인한 자동차보험금 누수는 결국 선량한 보험가입자들의 부담이다. 국토부 방안대로 자배법이 개정되면 궁극적으로 보험료 인하 효과를 가져 올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교통사고 처리 시 공적 체크기능이 선진 외국에 비해 미비하다보니 사고 운전자 간에 가해·피해 여부를 가리기 위한 충돌이 잦고 과실비율 산정과 보험금 지급을 둘러싼 불만이 발생해 나중에 보험민원 제기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경찰이 교통사고를 조사하게 되면 객관성과 공정성이 담보될 수 있어 운전자의 안전의식이 높아지게 되고 민원도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보험소비자 피해 등 단점도 많아>
아무리 신고 절차를 간소화한다 하더라도 보험소비자로서는 경찰에 출두해 조사를 받으면 여러 가지 불편과 시간적 낭비가 초래된다. 경찰 조사과정에서 가해자를 범죄자 취급한다는 불만이 나올 수 있으며, 차라리 보험처리를 포기하고 자비로 해결하려는 유혹을 느낄 수 있다. 선의의 보험소비자 피해가 우려될 수 있으며, 나아가 신고를 강제할 방법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경찰 신고 절차와 더불어 보험금 지급절차가 까다로워지면, 지금도 불만족스러운 피해보상 문제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더욱 높아질 수 있다. 특히 현재는 합의가 이뤄지면 경찰에 신고할 필요가 없어 교통법규 위반이나 교통사고로 인한 형사처벌을 받지 않지만, 신고를 하게 되면 합의하고도 도로교통법에 의해 벌점이나 벌금 등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또 현재의 경찰 인력으로는 모든 교통사고를 다 조사하기가 불가능하다. 2011년 경찰, 보험사 및 공제조합이 처리한 전체 교통사고는 89만7271건에 달했다. 이중 경찰에 신고접수돼 처리된 건은 22만1711건으로 24.7%에 그쳤다. 4건 중 3건은 경찰 신고 없이 보험사 중개로 사고당사자간에 합의 처리됐다는 이야기다. 법 개정이 된다고 해도 경찰인력이 먼저 늘어야 가능한 일이다.
<선진국의 사례>
선진 외국의 경우 사람이 다치면 크든 작든 일단 경찰에 신고하는 절차를 밟는다.
일본에선 사고가 나면 우선 먼저 경찰에 신고하고 경미한 사고에 한해 합의처리가 이뤄진다. 보험처리를 하려면 경찰의 사고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미국에서도 교통사고 경찰 신고가 법적으로 의무화돼 있다. 인적사고 발생 후 10일 안에 경찰에 신고하지 않으면 면허 취소나 면허 정지의 처분을 받는다. 미국은 주마다 500달러나 1000달러를 초과한 물적 피해 교통사고도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물적·인적 피해의 종류에 상관없이 교통사고는 무조건 24시간 이내에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 이 나라에서는 경찰이 일단 교통사고 현장에 출동해 사고 경중에 따라 단순 물적 피해 사고는 보험사 간에 처리하도록 유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