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택시·화물 등 자동차 운수업계에 크고 작은 불법·비리 행위가 판치고 있다. 최근들어 언론에 자동차 운수업계의 비리가 터져나오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을 정도다.
유가보조금 횡령은 이제 예사롭게 이뤄지고 있고, 교통량을 속여 버스보조금을 타가거나 채용을 미끼로 뒷돈을 받는가 하면 취업 명목으로 소개비를 갈취하는 등 불법·비리 유형도 실로 다양하다.
최근들어 적발된 자동차운수업계의 불법·비리 사례를 알아보자.
◇유가보조금 편취 화물기사 무더기 입건= 부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1일 무허가 석유판매상과 공모해 주유 금액을 부풀리는 등 총 335차례에 걸쳐 1억5000만원 상당의 허위 전표를 발행한 후 정부가 지급하는 유가보조금 1600만원을 편취한 혐의(사기 등)로 윤모(38)씨 등 화물차량 운전기사 86명을 입건했다.
윤씨 등은 지난해 10월 부산 남구 감만부두 앞 노상에서 무허가 석유판매상인 박모(40세)로부터 경유 338ℓ(시가 43만원)를 넣은 후 주유 금액보다 17만원이 많은 60만원의 초과 전표를 발행해 유가보조금 4만5000원을 빼돌리는 등 지난해 8월부터 6개월간 유가보조금 1600만원을 편취한 혐의다. 이들은 실제로 기름을 넣지 않은 채 가짜 카드 전표를 발행하는 속칭 '카드깡' 수법도 동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벽지 교통량 속여 보조금 '꿀꺽'= 광주 서부경찰서는 지난 27일 벽지 노선 교통량을 고의로 줄여 버스 운수업체에 보조금 수천만원을 지급한 전남 모 군청 교통행정부서 담당공무원 L씨(36·7급)와 상관 Y씨(51·6급), K씨(27·계약직) 등 3명을 공문서손괴·위조·행사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또 교통량 조사에 앞서 부정한 방법으로 승객 수를 줄이고, 버스 차고지에 폐수 정화시설을 설치하지 않은 모 운수업체 대표 H씨(65)를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와 수질및 생태계보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L씨 등은 지난 2008년 6월께 관내 버스 운수업체가 운행하는 벽지 마을 구간 교통량조사표를 훼손한 뒤 교통량을 줄여 허위작성한 조사표를 근거로 군 보조금 2700만원을 운수업체에 지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벽지 구간 교통량을 5일간 조사하면서 조사요원 L씨(35·일당직)가 일일평균 26명의 승객이 탑승했다고 작성한 조사표 대신, 승객이 1명도 탑승하지 않은 것처럼 서류를 위조해 비수익노선 기준(일일 14.8명 미만)에 맞춰 보조금을 지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운수업자 H씨는 군청으로부터 교통량조사 통보를 받고 교통량을 줄이기 위해 '버스가 도착하기 전 승합차로 승객을 실어 나르라'고 기사들에게 지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모 군청은 매년 실시하는 교통량조사를 승객이 적은 농번기 때 실시하고, 조사요원을 공무원가족으로 채용한 데다, 이와 관련된 운송업체의 비리를 제보받고도 묵인한 것으로 조사됐다.
◇광주 시내버스 '뒷돈 채용' 파장= 최근 광주의 모 시내버스 운전기사들이 스스로 '뒷돈 채용' 사실을 고백하고 이를 사법기관에 고소했다.
이들이 밝힌 비리 내용은 충격적이다. 채용 대가로 1인당 250만~1100만원까지 뒷돈을 제공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노선배정·법규위반 해결 등에도 '뒷돈'이 어김 없이 오갔다.
채용이 됐다 해서 '뒷돈'이 없어지지 않는다. 운행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저질러지는 법규 위반도 '뒷돈'으로 무마할 수밖에 없고 배차 역시 '뒷돈'을 건네야 '좋은 노선'을 받을 수 있다. 한마디로 회사 내에서 처리되는 모든 일들이 '뒷돈' 없이 안된다고 운전기사들은 밝혔다.
광주지검은 비리 의혹에 휩싸인 특정 버스회사를 전격 압수수색했다. 광주지역뿐만 아니라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시내버스회사 간부들이 채용대가로 뒷돈을 챙긴 사실은 심심치않게 적발되고 있다.
◇버스운전사 취업 명목으로 소개비 갈취= 서울 강북경찰서는 지난 28일 버스회사에 운전기사로 취업시켜 주겠다고 구직자들을 속인 뒤 돈을 가로챈 A씨(39)를 사기 혐의로 수배했다.
A씨는 지난해 7월부터 8월30일까지 공범 B씨(49)와 함께 버스회사 취업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접근해 "소개비로 300만원을 주면 운수회사에 취업시켜주겠다"고 속인 뒤 C씨(55) 등 5명으로부터 각 300여만원씩 모두 1620만원을 가로챈 혐의다.
경찰 조사결과 이들은 B씨가 18년 동안 버스회사의 과장으로 근무해 아는 사람이 많은 점을 이용, 이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공범 B씨는 수배사실을 모르고 지난 26일 노원경찰서 교통민원실에 운전면허 경력증명서를 받으러 갔다가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과적 단속 비리' 무더기 징역형= 광주지법 형사10단독 양형권 판사는 지난 27일 화물차주로부터 과적 단속반 위치 정보를 알려주거나 과적을 묵인해준 뒤 거액의 뒷돈을 챙겨온 전 광주국도관리사무소 소속 도로관리원 S씨(35) 등 광주, 남원 지역 전·현직 도로관리원 3명에 대해 뇌물수수죄를 적용해 징역 1년2월∼2년의 실형을 선고하고 범죄수익금 2800만∼6700만 원 전액을 추징했다.
재판부는 또 같은 혐의로 기소된 L씨(45) 등 전직 도로관리원 4명과 건넨 뇌물의 액수, 횟수가 많은 화물차주 L씨(33) 등 16명에 대해 징역 3∼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나머지 화물차주 81명에 대해서는 벌금 50만∼700만 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공무원들의 경우 국민 신뢰를 배반한 채 단속 정보를 제공하고 뇌물을 받은데다 범행이 장기간에 걸쳐 상습적으로 자행됐고, 그 횟수가 매우 많은 것으로 드러나는 등 죄질이 매우 불량해 징역형이 불가피하고, 화물차주들 또한 뇌물로 단속을 피하는 범법 행위를 저지른만큼 처벌을 피할 수 없다"고 밝혔다.
S씨 등 도로관리원들은 2006년 10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3년 동안 전국 각지에서 실시하는 이동식 과적단속반 위치 정보를 알려주는 한편 단속을 무마해주는 대가로 대당 10만~100만 원씩 수백 차례에 걸쳐 1인당 1200만∼6700만 원의 뒷돈을 받아챙긴 혐의로 기소됐다.
◇불법·비리 행위 판치는 이유는= 자동차운수업계에 유독 불법·비리 행위가 판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업계 관계자들은 무엇보다 자동차운수업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자동차운수업 자체가 사양산업으로 수익성이 좋지 않아 경영자나 종사자 모두 어려움을 겪다보니 불법인줄 알면서도 금전적인 유혹의 손길에 빠지기 쉽다는 이야기다.
범죄수사 관계자들은 정부의 보조금 지원 등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유가보조금 등을 비롯한 정부지원이 업체 또는 개인에게 너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어 현재의 인력만으로는 제대로 관리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아울러 제도적으로도 불법·비리를 조장하기에 허술한 점이 많다고 지적한다.
범죄수사 관계자들은 자동차운수업계의 불법·비리행위를 뿌리뽑기 위해서는 먼저 구멍이 뚫린 법적 제도적 정비와 함께 관리인력의 보충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병문 기자 다른 기사 보기